![]() |
![]() 정녕 봄이다. 한결 부드러워진 봄바람에 목련은 이미 꽃망울을 화사하게 터뜨렸다. 돌담길 양지바른 쪽에도 작은 꽃들로 봄 잔치가 한창이다. 열매가 개 불알 같다고 붙여진 개불알꽃은 푸른 별들을 뿌려놓은 것처럼 빛나고, 광대치마를 두른 광대나물의 진분홍 꽃도 앙증맞다. 고개 숙여 찬찬히 눈길을 주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작고 귀한 꽃들이다. 3월이면 아이들도 꽃으로 피어난다. 새 학년 입학시기여서 그런지 아이들 표정이 밝고 목소리에도 생동감이 넘쳐난다. 외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튼튼하게 자라나 이름을 빛내라고 온 정성 쏟은 아이다. 어디 손자뿐이랴. 모두가 가정의 꽃들로 피어나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날 기대를 담은 귀한 존재들이다. 갓 입학한 아이들, 정작 부모들이 더 안달이다. 아이가 또래들과 잘 어울리고 학교생활에 적응할까? 공부는 잘할까? 걱정과 불안, 기대와 설렘이 뒤섞인 조바심일 것이다. 비행기는 이륙할 때가 긴장의 순간이듯, 이런 긴장은 필요하다. 입학은 아이에게 중요한 변화다. 첫 단추 끼우기처럼 처음 시작이 어긋나지 않도록 1학년 담임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자녀의 독특한 심리나 버릇 등 교육에 도움이 될 정보를 상담을 통해 선생님과 공유해야 한다. 교육은 식물을 가꾸듯 조건만 제공하면 되는 활동이 아니다. 개인의 미묘한 심리적 특성에 맞춰 그야말로 줄탁동시(啄同時) 교육원리를 적용해야 하는 교육의 대상들이다. 교육의 기본은 존중이다. 교육대상인 학생을 존중하지 않으면 어찌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존경이나 배려는 일방적인 감정의 흐름이지만 존중은 상대의 의견이나 인격,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는 존엄성으로서의 존중이다. 감정만이 아니라 표현으로서의 행동양식이다. 그래서 '존중'은 최상의 교육수단이라 할 수 있다. 영혼이 통하지 않는 교육, 즉 무시나 멸시 인격적인 교감이 없다면 어찌 교육이랄 수 있는가?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과정에서 역동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에 대한 존중은 교육 대상으로서의 존중이지만 교사나 부모에 대한 존중은 존중받을 행동을 함으로써 가능한 것이기에 모두에게 자기 수양이 필요한 덕목이다. 선생님은 학생을, 학부모는 교사를, 교장은 구성원 모두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풍토는 역동적인 학교다. 이는 좋은 학교의 조건으로 교육효과를 높이는 수단임을 경험적으로 입증하고도 남는다. 어떤 이는 인생을 삶의 예술에 비유한다. 교육은 잠재적인 능력과 영혼을 꽃피우는 그야말로 정교한 예술이다. 이 예술 속엔 존중의 미학이 숨어있다. 이를 발휘하는 일이 곧 교육의 기술인 것이다. 존중은 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보석과 같은 미덕이다. 부부끼리 서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머나먼 인생행로를 어떻게 함께 할 것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둠사회에서 기본예절이나 최소한의 존중심도 없다면 우리 모습은 어찌 될까? 투쟁을 수단으로 삼는 무리들에겐 존중은 한낱 사치스런 수사에 불과하다. 말로는 그럴듯하지만 너 죽고 나 살기 정치투쟁에 국민은 얼마나 멍드는가. 정치에도 최소한의 존중을 정치미덕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서로에 대한 존중감이 사라진 사회는 얼마나 살벌하고 천박스러울지, 그야말로 아찔하다. 존중은 마음먹기에 따른 의지의 문제다. 존중을 삶의 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품격 높고 아름다워질까? 새로 입학하는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도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그렇게 꽃이 되고픈 것이다. 존중받고 싶다면 존중할 일이다. <이경주 서귀포시책읽기위원장.전 초등학교 교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