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오늘 저녁, 농장으로 오라. 노리 잡아먹게." "미신 노리 말이꽈?" 지난 해 이맘때쯤, 농장 길 커브에 작은 송아지만한 노루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금방 차에 치였는지 체온이 아직 따듯하다. 겨우 옆으로 치워놓고, 모 시인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거양, 먹었땅양, 큰일 납니다. 잡은 사람보다 먹은 사람 죄가 더 커마씀." "죽은 거 먹는데 뭔 죄가 되나?" "아니우다, 재수 어시민 바로 가는 거라마씀." "광고 내면서 먹냐!" 아무튼, 들뜬 입맛이 싹 가시는 순간이었다. 이는 분명, 지친 농심에 내린 하늘의 뜻일진대, 먹으면 안 된다니…. 그냥 놔두면 죽은 게 살아날까? 모처럼의 '노루구이' 이 절호의 기회를 차마 놓칠 것인가, 생각 갈래 마음 갈래, 먹으랴? 참으랴? 짐승의 욕심에도 한계가 있어야 한다. 저 드넓은 한라산 자락을 다 차지하고도 모자라, 농작물까지 욕심내는 작금의 노루의 행태는 도를 넘어도 한참을 넘은 것이다. 그 책임이 모두 사람에게 있다. 왜냐? 눈 좀 쌓이면 법석을 떨며, 먹이를 뜯어다 노루에게 바치는 장면이 자주 방영됐다. 동물 애호가임을 자처하지만, 지극한 동물사랑이라 자찬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은 망조다. 그들의 야성, 즉 자주성 자립성을 잃게 만든 근본원인이다. 그러다보니 노루는 자연히 사람에 의지하게 됐고, 농작물에도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해도 아무런 제재조치가 없었다. 더구나 자기들을 건드린 사람은 벌 받는다는 정보까지 훤히 꿰뚫은 것이다. "사람들 농사는 우리의 밥이다. 마음대로 휘젓고 먹어도 된다. 배 터지게 먹고 먹어도 우리를 건드릴 놈 하나 없다. 폐농…. 그들 사정이지, 신경 쓸 것 없어." 노루들 사고방식이 이러하다. 정은이처럼, 안하무인이요, 기고만장에 이른 것이다. 그 우매한 조례규정을 교묘히 이용, 노루는 실로 사람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근면성실을 잃은 지 오래고, 삶의 터전도 등진지 오래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농작물 주변을 맴돌며, 애써 가꿔 논 농작물을 다 절단내고 있는 것이다. 실로 퇴폐와 향락에 빠진 무위도식의 애물단지다. 애초, 사람들이 야무지게 길들였으면, 감히 노루 따위가 농작물에 접근도 못 했을 것이다. 이는 탁상공론이 아닌, 필자의 경험이다. 젊은 시절 바다에 들면, 가죽객주리(쥐포)가 참 많았다. 작살을 들이대도 손바닥만한 몸통 전면을 그대로 노출한 채 추호의 동요도 없었다. 그러기에, 작살은 단 한 번도 빗맞은 적이 없었다. 먼저 본 게 임자였다. 깊은 물 큰 고기를 사냥하다가 점심 때가 되면 나오면서, 먹을 만큼 그 고기를 골라잡았던 것이다. 머리 부분에서부터 가죽을 벗기는데, 두어 번 손질로 피둥피둥한 속살이 된다. 비릿내도 없는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갯바위 생수에 발 담그고, 미리 준비해간 초장에 먹는 그 점심 맛이란, 요즘 횟집에서의 갯돔이나 다금바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상황은 급변했다. 작살을 들이대면 그 고기의 눈빛부터가 달라진 것이다. 몸통을 신속히 옆으로 비켜 표적부위를 최소화 하며, 재빨리 도망치는 것이었으니, "아-이게 무슨 변화인가?" 망쟁이 바당도 그랬고, 우금포 바당도 그랬다. 소금막, 맹지미, 우쑤물 바당도 다 그러했던 것이다. 위기를 감지한 객주리 수뇌부가, 온 바다의 동족에 대한 전면적 생존교육을 시킨 것이다. 미물이지만, 얼마나 놀라운 상황대처인가! 노루도 마찬가지다. 처음, 농작물에 입질을 시작할 때부터, 보는 족족 잡아서 고아먹었다면, 지금의 그들은 농작물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특하기로야, 노루가 그 가죽객주리에 못지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문신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