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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4특집]종자주권시대와 제주
소리없는 종자 전쟁… 제주씨앗을 지켜라
위영석 기자 yswi@ihalla.com
입력 : 2013. 04.22. 00:00:00

▲지난해부터 국제식물 신품종 보호동맹이 본격 발효되면서 종자를 둘러싼 소리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제주자치도는 씨드밸리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해 종자주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백합 종구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강경민기자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 발효
무단으로 증식해 사용하던
과거와 달리 저작권으로 보호
토마토 종자 1g에만 14만원
제주서 생산한 주요작물도
종자 생산국에 로열티 지급해야


씨드밸리프로젝트 본격 가동
제주도 농업기술원 농산물원종장
지역종자산업 선도 역할 톡톡


벤치마킹 대상으로 '우뚝'
감자, 2010년부터 100% 자급
도내 1위 수출 농산물인 백합도
올해부터 생산해 농가에 공급
양파 '싱싱볼'품종 자체 개발해
300~400ha까지 확대 보급키로


지난해부터 국제식물 신품종 보호동맹(UPOV)이 본격 발효되면서 토종 씨앗이 없는 우리 주변의 농산물에 로열티를 물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품종의 특성을 후대로 전달해 주는 것이 종자인데 일부 종자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품질이 우수한 토마토 종자 1g 가격은 13만∼14만 원이고 파프리카 종자 1g도 9만 원을 넘는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 종자를 개발하지 않고 수입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대외 로열티 지급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농민들이 애써 지은 농산물의 가격 중 일부는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만큼 종자주권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종자산업이 생명산업=과거에는 농사를 지을 때 종자를 남에게 얻어 쓰거나 무단으로 증식해 사용했다. 하지만 이제는 품종 개발도 지식재산권으로서 종자산업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며 이 법을 근거로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 협약에도 가입했다. 이 법에 따르면 품종을 개발한 육종가가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등록하면 이 종자를 허락 없이 증식이나 판매할 수 없게 되므로 농어민은 판매자에게서 정당하게 구매해 사용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사람을 보호함으로써 더욱 우수한 품종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도록 유도하려는 제도다. 대한민국도 종자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10년 전 UPOV에 가입하고 종자시장을 개방했다. 가입 당시 국내적인 상황을 고려해 연차별로 20∼30개 작물을 지정해 왔으나 6개 작물은 보류해 왔다. 그러나 2012년부터는 그동안 유예해 왔던 6개 작물에 대해서도 새로운 품종 개발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 감귤의 경우 거의 99%가 외국산 종자이고 김과 미역 등 해조류 종자도 절반 이상이 외국산 종자여서 그동안 무단으로 번식시켜 사용하던 농가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제주 주요농산물의 종자자급률을 보면 종자주권 확보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종자확보에 나섰던 감자는 100%에 이르지만 무는 80%, 당근 15%, 양파 7%, 양배추 1%에 불과하다. 산북지역 주요 생산품인 브로콜리와 백합은 우리종자가 단 한종도 없다.

현재까지 로열티 분쟁은 주로 영양번식으로 증식해 재배하는 딸기, 참다래, 장미, 국화, 난 등의 원예작물에서 발생되고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개발된 감귤품종을 우리나라에 품종보호 출원하게 되면 로열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 만약 감귤의 로열티 대상품종을 30%만 갱신해도 지급해야 할 로열티는 29억원을 상회한다(농촌진흥청 자료).

▶씨드밸리프로젝트 본격 가동=종자산업에 대한 세계 각국의 준비는 치열하다. 세계 종자 시장규모는 695억 달러이고 그 중 농산물이 367억 달러를 차지한다. 특히 IMF사태 이후 다국적기업이 국내 종자산업에 진출하면서 국내 4대 메이저 종자회사가 모두 다국적 기업에 인수합병됐다. 다국적 10대 종묘회사가 전 세계 종자생산의 67%를 차지할 정도다.

이에 맞서 제주자치도가 씨드밸리 프로젝트를 가동, 본격 종자주권 확보에 나서 그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02년 설치된 제주자치도 농업기술원 농산물원종장이 지역종자산업을 선도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1990년까지 일본산 종자를 도입했던 감자에서 2010년부터 100% 자급률을 달성하는 성과를 냈다. 2002년 원종장이 설립된 이래 10년간 감자 종서비 절감 효과가 340억원, 이로 인한 생산성 증대효과가 666억원에 이를 정도다.

이와함께 도내 농산물 수출 1위 작목인 백합도 종구 생산기반이 마련됐다. 매년 921만달러(100억원 내외)를 수출하는 농산물 1위 작목이지만 매년 500만구의 종구를 네덜란드에서 들여와 경영비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2011년부터 백합종구·전문생산단지 조성과 오리엔탈백합 절화용 종구 100만구 생산사업을 추진, 2011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종구 107만구를 생산해 올해 2월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재배농가에 공급하는 성과를 냈다. 제주자치도는 연차적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경우 수입종구의 50%를 대체하고 매년 5억2000만원의 종구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시급한 감귤의 경우 내년까지 감귤 우량 변이가지 찾기사업을 통해 3품종에 대해 품종보호출원하고 감귤교잡육종 연구를 통해 2020년까지 3~5개 품종을 보호출원할 계획이다. 재배면적이 계속해서 줄고 있는 맥주보리는 프리미엄 제주맥주 생산과 연계, 우수한 맥주보리를 선발하면서 제주에서만 재배 가능하도록 전용실시권을 확보했고 매년 1300톤이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국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나물용 콩은 기계화가 가능한 신화콩 선발과 농협과 연계한 채종단지 운영으로 2011년부터 매년 50톤을 생산·공급하는 체계를 확립한 상태다. 양파는 '싱싱볼'품종이 육성되면서 농협 NH종묘와 통상실시 협약을 체결, 300~400ha까지 확대 보급된다. 이밖에 약용작물 종묘보급센터 설치와 함께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한약재 원료 60% 대체가 이루어지면 농가소득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 김창윤 홍보담당은 "농산물원종장 중심의 씨드밸리 조성계획에 대한 다른 나라의 벤치마킹이 잇따르는 등 제주가 종자주권시대에 맞춰 세계적인 종자생산메카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영석기자 yswi@ihalla.com

[전문가 의견/이상순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장]종자는 생명산업이다

2012년부터 국제신품종보호동맹에 따라 모든 작물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제주의 주요작물인 감귤은 물론 감자, 월동채소류는 종자비가 크게 차지함으로써 농가경영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다. 특히, 월동채소는 매년 47억원, 수출 주작목인 백합은 40억원의 종자비를 지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제주자치도는 제주산 종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2년 3월 농업기술원에 농산물원종장을 설치, 주요종자 자급화에 본격적인 연구와 지도를 시작했다.

그 결과 씨감자는 완전 자급하여 일본산 보다 1/5, 민간업체 보다는 1/3가격으로 공급하여 매해 1000억원대의 감자생산액을 유지하는 쾌거를 거두고 있다. 양파의 경우 '싱싱볼' 품종을 자체 개발 69ha에 보급하여 종자비를 크게 절감시키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우수 품종상' 을 수상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동안 농산물원종장에서 꾸준히 종자 자급화를 위해 노력한 결과 마늘, 콩, 맥주보리는 이미 종자 자급에 근접했고, 이제는 제주 제1의 수출 효자 작물인 백합, 약용작물 종자 자급에도 박차를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성과는 대한민국내의 어떠한 농업 연구·지도기관에서도 내놓지 못한 제주특별자치도만의 성과라는 점에서 현재 많은 국내 관련 기관은 물론 해외에서도 벤치마킹 하고 있으니 나름대로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감귤의 경우도 민선5기 도지사 공약사업으로 2011년 농업기술원에 '감귤육종센터'를 설치한 이후 자체 개발 육성한 제주고유품종인 '상도조생' 을 13㏊ 보급하는 한편, 1만개 이상의 교잡 실생 개체를 확보해 신품종 개발에도 열정을 다하고 있다.

세계적인 종자시장은 총 7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규모로 매년 4%이상 성장하는 미래 전략산업이자 블루오션 시장이다.

농업기술원은 우수한 농산물 생산 못지않게 종자 산업을 최우선 사업으로 선정하여 시책을 펴나갈 것이다. 그래서 세계시장에 우리 종자를 떳떳하게 내놓고 '로열티'도 받고 소득도 창출할 것이다. 우리는 2014년까지 브로콜리를 비롯한 7개 주요작물 12종의 신규품종 개발을 착실히 수행해 나아가고 있다. 또한 정부의 '골든씨드 프로젝트'와 함께 수출업체 육성과 난지권 종자산업 지원센터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등 종자 종주국으로 입지를 확고히 갖춰 나아갈 계획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즉, 우리 몸에는 우리 농산물, 제주다운 농산물 생산을 위해 제주에 맞는 종자를 개발해 보급하는 것이 우리농업기술원의 사명이다.

앞으로 금보다 비싼 종자가 우리 농업기술원의 손으로 자급화할 날이 멀지 않았다. 이것이 농업기술원의 사명이고 100년 뒤 제주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산업의 시작인 것이다. 그래서 종자는 생명산업의 완성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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