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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봄을 풀어낸다. 하얀 벚꽃무더기가 목전에 봉글거리고 춘화(春花)의 잔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무뎌진 오감을 탓하듯 얼른 중년의 가슴속으로 들어와 앉는 화산섬의 봄. 아름다운 4월이 어느새 다 지나간다. 오랜 기간 겪어온 계절의 변화지만 언제나 같음이란 없다. 매번 다르고 해마다 새롭다. 등 뒤에 머무르는 섬마을 미풍조차도 신선하게 와 닿는 색다른 감촉이라니. 예전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일들이다. 물리적 숫자의 증가로만 여겼던 늙음이란 현상이 시계(視界) 뒤편에 숨어있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모양이다. 수십 년을 함께 한 익숙한 일상임에도 동공을 통해 들어오는 낯익은 풍경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익숙한 하루에, 경이로움마저 느껴지는 요즘이다. 지금의 삶이란 과거에 축적되었던 깨알 같은 생의 편린들이 이뤄낸 존재물일 것이다. 미래의 삶 역시 지금 내가 보고 느끼고 행동했던 순간의 흔적들이 연속적으로 모아진 집합체일 것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한번 흘러가면 다시는 잡지 못할 찰나의 접점들. 공연히 생각이 많아진다.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라 했다. 그와 더불어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행위가 이데아(idea)의 표상인 철학이라 믿었다. 원래는 진리 인식(眞理認識)의 학문 일반을 가리켰던 것이 철학이었다. 그러나 중세에는 종교가 근세에는 과학이 독립하면서 이젠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인생관 혹은 세계관 따위를 탐구하는 실용성을 철학이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있어 철학은 여전히 어려운 영역이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사상가들만의 전유물로 존재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은 단순한 실존적 물음인 '나는 누구인가'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의미 탐구를 근본으로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존재의 의미를 가장 중요히 생각해온 것이 철학이란 학문이었으며 인간과 자연과 역사에 대해 존재론적 해명을 위한 형이상학적 접근이 철학의 본질이었다. 그러나 나는 살아오는 오랜 동안 정작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갖지 못하였다. 또한 지금 나는 어디쯤에 와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그저 단순하게 열심히 살았노라, 최선을 다하노라 자위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두루마리 화장지를 풀어쓰듯 내게 주어진 수많은 날들을 무심코 흘려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나는 이웃과의 따뜻한 소통을 꿈꾸었고 시국에 대한 진중한 고민을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철학적이지 않은 삶은 공허하다. 아무것도 걸치지 못한 나신의 몸짓에 불과하다. 먹고 사는 것에만 몰입하는 시대, 철학을 상실한 시대에 사는 인간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나마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 스스로 마음을 열어 주위에 관심을 가져야만 써내려갈 수 있는 한 줄의 졸문(拙文)이 아니던가. 이러한 이유로 나는 오늘도 미진한 글쓰기에 목을 맨다. 소소할지언정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찰지게 살아내기 위함이다. <허경자 수필가·서귀포문화원 부원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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