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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건강보고서 3H
[생로병사]엄마의 선택
입력 : 2013. 04.26. 00:00:00

박철민 제주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산부인과 레지던트 1년차가 되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다음 날 제왕절개 수술 예정인 30대 후반의 초산모에게 수술요청서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산모는 심한 승모판 협착증으로 인한 심부전을 가진 임신 자체가 금기인 분이었다. 그런 분이 만삭이 되어 제왕절개 수술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산모는 웃으며 자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수술 중에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하였다. 그 모든 위험성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임신을 했는지, 왜 임신을 지속시켰는지 물었다. "어릴 때부터 심장이 매우 안 좋아 결혼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아갈 생각이었는데 늦은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또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과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귀한 생명을 제 건강 문제로 없애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대답을 듣고는 더 이상 그 산모를 탓하거나 심각한 얼굴로 나무랄 수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수술요청서를 받으면서 마취나 수술 중에 사망할 수 있다는 얘기를 환자들에게 수도 없이 했지만 아무에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래, 다 잘 될거야"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그 산모를 위로하면서 위험성이 큰 상황이기는 하지만 다 괜찮을 거라고 격려해주었다. 그렇게 수술요청서를 받고 다음날 오전 9시 수술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분만실을 지키는 1년차 레지던트라서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고 평소 하던 대로 진통중인 산모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 때 수술실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그 산모에게 수술 중 쇼크가 와서 출혈이 조절되지 않아 수혈할 피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먼저 혈액원에 혈액을 요청하고 나니 내 혈액형이 산모와 같은 O형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 내 피를 바로 뽑아 수술실로 넣어주고, 이어서 도착한 혈액도 수술실로 넣어 주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 수술실에서 연락이 왔다. 수술은 무사히 마쳤지만 산모의 상태가 좋지 않아 중환자실로 간다는 것이었다. 중환자실로 옮기자마자 환자의 심장에 또 문제가 생겨 심폐소생술은 중환자실에서 계속 되었다. 결국 그 산모는 오후 5시경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수술 전날 다 괜찮을 거라고 서로 격려하고 얘기를 나눴던 그가 내 눈앞에서 이렇게 허망하게 숨지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그 순간 너무 어지러워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침부터 헌혈하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다보니 점심도 거른데다가 중환자실에서 그를 위해 몇 시간동안 심폐소생술을 하고나니 파김치가 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대충 일을 마무리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잘 저녁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돌아가신 분에게는 너무 미안했다.

다음날 아기가 궁금하여 신생아실을 찾았다. 아기는 딸이었고 너무나 건강한 모습으로 예쁘게 잘 자고 있었다. 퇴원하면 아빠가 데리고 가서 키울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 아기는 아마 지금쯤 18살 예쁜 여고생이 되었을 것이다. 엄마의 선택이 헛되지 않도록 아빠와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좋겠다. 지금도 가끔씩 그 날 일들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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