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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하루를 시작하며]아장 꿩 가리치듯
입력 : 2013. 05.22. 00:00:00
"죽어지지 않으민 병원엘 무사 가느니." 생전의 어머니 말씀이다. 밭에 가고, 바다에 들고, 동네 애기 날 때는 한밤중이라도 달려가 받아내곤 하셨다. 한 생을 억척같이 살아 기어이 우리 5남2녀를 키워내신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도 웬만해선 병원에 가지지 않는다. 3월 초 묘목굴채 작업이 한창일 때, 그날도 집에 와서 몸을 씻다보니 왼쪽 엄지 발가락이 물집 생겨 터져 있었다. "까짓것!" 평소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농장에 계속 다녔다.

한 보름 지났을까. 통증이 심해 병원엘 갔더니, 의사가 깜짝 놀라며 "빨리 큰 병원에 가라"한다. 이튿날 제주시 H 병원, "이렇게 되도록 뭘 했느냐"며 입원치료를 권했다. 묘목굴채, 식재, 전지전정, 접목 등 경황이 없을 때라 입원할 엄두가 안 났다. 치료를 받고는 다시 농장에 가서 일하고를 반복했던 것이니, 상황은 더 악화됐다.

거동이 불편할 지경에 이르러, 사태의 심각성을 말하는 의사와 가족들의 염려로 입원하게 된 것이다. 입원…. 우리에 갇힌 야생마처럼 견디기 어려웠다. 이 바쁜 시기에 "이게 무슨 노릇인가"를 생각하면, 미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쩔것이랴. 방마다 가득한 저 입원환자들은 한가해서 여기에 와 있는가에 생각이 이르러,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아장 꿩 가리치듯" 전화로 작업 지시를 시작한 것이다. 어느 농장 어느 곳의 작업내용이나 그 상황이 가서 보는 듯 훤하니,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한 평생 그의 코 고는 소리를 견뎌낸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위대하다"는 어느 일본기업소설의 내용을 기억 하거니와, 옆 자리 환자의 그 코고는 소리 때문에 곤혹을 치렀다. 며칠 지나니 나도 위대해져서 그 소리도 견딜 만했다. 모처럼 잠을 실컷잔다. 그 동안 쌓였던 피로가 말끔히 씻긴 듯하다. 하늘이 나를 좀 쉬라 하심인가?

"형님, 얼말 살젠 경 일만 헴수광." 동생의 물음에 잠시 말을 잃었지만, 이 땅의 어느 어머니 아버지가 일하지 않고 살았는가. 오늘날 우리가 존재함도 그로 인한 것 아니겠는가. 일, 주로 귤나무를 대하는 나의 일은, 어쩌면 시를 쓰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늘 살피고, 다듬고, 북돋아야 하는 점이 그러하다.

밤을 새워도 시어 하나 못 고치는 날이 흔하지만, 전정가위를 들면 손이 자동적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전정을 하는 것은 햇볕을 잘 들게 해 결실성을 높이려 함이다. 아직도 하늘의 눈엔 내가 미흡해, 발가락 하나 아니 다리 하나를 전정하려 하심인가?

흔히, 시 쓰는 일을 고통이라 하는 이가 있다. 시 쓰는 즐거움이라 하는 이도 있다. 농장 일하는 고통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농장일의 즐거움과 보람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여가수는 노래하는 것을 전쟁이라 했고, 강남스타일 싸이는 재미요, 즐거움이라 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 느끼는 시각은 판이하다. 생각할랴 치면, 불렀던 노래를 계속 반복해야 하는 가수도 고통이다. 매일, 썩고 곪고 문드러진 살을 째고 도려내고 꿰메는 의사는 고통 아니겠는가. 다들 고통이라고 말하는 거기서, 재미와 보람을 느낄 때, 삶의 그 질이 달라지는 것 아닐까.

우리 병실에 두 다리가 깊이 짤린 환자가 왔다. 레미콘 회사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그 젊은이는 늘 웃으며 명랑하다. 그 나름의 현실을 긍정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차마 눈물겹다.

치료해도 차도가 없어, 담당의사가 3차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어쩔거랴, 수소문 끝에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에 가기로 예약이 됐다.

이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 다들 잠들은 이 새벽, 옆 환자의 콧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쓴다. 몸이 아프니 여의치 않다. 워드 칠 곳도 없다. 그리움 아직 먼데, 하늘은 정녕 내게, 그 젊은이처럼 웃으며 살라 하심인가? <강문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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