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고향을 떠나 육지로 잠시 일터를 옮긴 지 두 달이 접어들었다. 이제는 익숙할 때도 될 만한데 왠지 마음 한 구석 허전한 낯섦은 여전하다. 낯섦을 달래는 데는 가벼운 여행도 좋지만 독서만한 것 또한 없다. 잠시 옮긴 일터에 구내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천만 다행이다. 아마 지난 겨울방학 어느 휴일 날이었을 게다. "아빠, 용돈 좀 줄 수 있어요?" 고2가 된 큰 아들이 모처럼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나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녀석은 한껏 멋들게 외출준비를 마친 후였다. 애들 용돈은 엄마가 담당이라 왜 아빠보고 용돈 타령이냐는 뻘쭘한 표정을 짓자, 연신 뒷머리를 긁적이며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용돈이 급하긴 급한 모양이었다. "엄마가 준 용돈 벌써 다 썼어? 아무리 방학이라지만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냐? 뭐 할 건데?" 녀석은 주려면 조용히 주시지 쿨하지 못하게 뭘 그리 꼬치꼬치 물어보는냐는 듯 어눌한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공부는 안 해도 책이라도 좀 읽고 해야지. 방학이라고 허구한 날 친구들하고 쏘다니기만 하면 어떻게 할 건데." 고지식한 아빠들처럼 잔소리 한마디 한 값으로 지폐 몇 장을 건넸다. 그날 저녁 느지막이 들어온 아들 녀석을 거실로 불러 앉혔다. "아빠는 네가 공부를 하든 안하든 상관하고 싶진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 하지만 책은 많이 읽었으면 한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것보다 네가 다양한 책을 많이 접했으면 하는 게 아빠 바람이다." 애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 성격이라 참 오랜만에 하는 잔소리였다. 선천적으로 책과는 거리가 먼 녀석은 내키지 않는 듯 고개 숙인 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런 녀석을 보며 거실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들어 녀석 앞에 들이대었다. '아버지'란 제목의 소설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독후감 한번 써봐" "예? 이걸 읽고 독후감을요?" 눈이 휘둥그레진 그 녀석에겐 고문이나 다름없는 일인 셈이었다. "일주일 시간을 줄게. 일주일 후에 독후감을 써오면 아빠가 10만원 준다." 말을 하고 다소 후회는 했지만 획기적인 제안이었다. "10만원요?" 마치 횡재한 것처럼 두 눈을 높이 쳐든 녀석은 "콜"을 외치며 책을 들고 제 방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일주일 후 그 녀석이 내게 내민 조그만 연필 글씨로 노트 두 장 분량 써 내린 독후감 첫 머리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란 책을 읽었다. 얼마나 책을 안 읽었으면 아빠가 돈을 10만원씩이나 주면서 책을 읽으라 했을까?" 그리고 간단한 줄거리에 군데군데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 독후감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내용도 감동적이었고 좋은 경험이었다. 책을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건 버스를 타건 어디서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고개 숙인 채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모습들이 요즘 이곳 풍경이다. 그래도 몇 년 전만 해도 책장을 넘기는 이들도 많았었는데. 10만 원짜리 독후감의 마지막 구절처럼 책을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오래도록 그 녀석 가슴 깊이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정윤창 작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