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구한말 제주읍성 북수구와 공진정 전경. 1600년 건축 보수·중건·재건 거친뒤 태풍으로 유실 일제강점기 그림엽서에 소개된 무지개형 돌문다리 난간형 안경다리로 변모… 일본식 영향으로 오인 지난 글에서 우리는 다케노 세이기치가 그린 1909년경 산지 풍경을 전체로서의 공간구성이란 측면에서 접근했다. 지난번에는 전체로서의 '숲'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그 숲을 이루는 부분으로서 '나무', 즉 개별 구축물로 시선을 옮기고자 한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들 개별 구축물들의 역사와 사연 또한 전체로서의 공간의 그것들만큼이나 깊고 비장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이 글은 다케노의 그림 및 몇몇 사진들과 함께 특히 북수구(파란색○)와 공진정(빨간색○)에 대한 이야기다. 북수구는 조선시대 성벽의 일부를 이뤘던 수문의 기능을 하는 문으로, 현재 산지천 북성교 지점(광제교에서 북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 수문은 아치형 즉 무지개 모양을 하고 있어 기록에는 홍문(虹門) 또는 홍예문이라고도 전한다. 때문에 건입동 사람들은 이를 두고 '휑이문'이라 했다는데, '휑이'는 '홍예(무지개)'를 제주어로 발음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그 외에도 북수구는 근대 일본의 영향인지 점점 안경다리 홍예다리, 홍문교, 원교, 외알 안경교(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가타 메가네 바시') 등의 다리 이미지로 불리게 되었다. ![]() ▲1909년 제주읍 산지의 풍경(다케노 세이기치 그림). "석성 주위와 마주치는 데를 굽어보니 수구에 홍예문이 지어져, 이 위를 통해 왕래한다. 수문의 바깥은 백규(百頃)의 뚝으로 둘러싸인 연못에 봄물(春水)은 넘실거리는데, 오리 떼가 열을 짓고 있다. 제방 위에는 파란 버드나무가 빙 둘러 있고, 언덕 위에는 인가가 있어 복숭아꽃이 곳곳마다 활짝 피어 있다. 그림과 같은 경치이다."('속음청사' 1898. 5. 15) 그래서인지 일제강점기 때엔 이 경치를 담은 홍예문 그림엽서가 유포될 정도였다. 그런데 필자가 궁극적으로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은 이 홍예문의 탄생에서 소멸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특히 일제강점기를 맞아 이 문에 대한 원형 기록과 그것을 담은 사진들이 혼선을 빚으며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북수구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성윤문 목사 재임시절에 창건된 이래(1600년), 1652년 8월에 큰 비바람으로 헐리자 당시 재임 목사 이원진이 "성채(城砦)가 있는 곳이니, 수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장구한 계획을 세우고자 한다면, 돌로 쌓는 것만 못하다" 하여 이듬해 비로소 무지개형 돌문(石門)이 제주 땅에 탄생하였다. 이후 수차례 태풍과 홍수 등으로 파손되며 북수구는 보수·중건·재건의 역사를 걸어왔고, 20세기 초반에는 그림①과 사진②의 모습을 하다가 어느 사이 사진③으로 개축되고, 마침내 1927년 8월 태풍으로 유실되었다. ![]() ▲1910년대~1920년대 초반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제주성 북수구와 공진정. 후지시마 글의 요점은 그 난간을 한 홍교는 나가사키 가교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그것은 '일본과의 원래의 관계를 보여주는' 예라 적고 있다. 사진②에서 보았듯이 제주의 홍예문엔 원래 난간이 없었다. 오히려 제주 홍예문에 일본식 난간이 세워지고, '문'이 '다리'의 개념으로 전이한 것은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때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일본을 대표하는 고건축학자마저 그것을 처음부터 갖췄던 외양인양 하고, 이를 일본의 영향으로 본 것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가 내도한 시기를 감안하면 홍예문의 조선 양식은 사라지고 없던 때다. 그가 제주에서 본 것은 사진② 이후의 '일본식' 난간을 갖춘 다리(사진③)로, 그와 흡사한 양식이 나가사키를 포함한 일본 규슈 지역에 전해진다. ![]() ▲1927년 10월(제149호) 조선총독부 정기간행물 '朝鮮' 표지사진으로 나온 '제주도 안경교'. ![]() ▲1935년경 산지교 너머로 보이는 측후소, 제주신사 전경. ![]()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