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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춘 칼럼
아직도 유효한 '지상의 平和'
입력 : 2013. 06.04. 00:00:00
지난 1962년 10월14일,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정찰기가 쿠바에 미사일 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항공사진 판독 결과 미사일들은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모델이었으며 사건의 배후엔 소련이 있었다.

미국은 즉각 쿠바 해상봉쇄라는 강경 조치를 내렸고 소련에 대해선 "전쟁도 불사(不辭)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다. 핵무기를 가진 미·소 초강대국(超强大國) 사이의 충돌로 빚어진 이 사건은 자칫 세계를 핵전쟁까지 몰고 가서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이 일촉즉발의 순간에 미·소 뿐만 아니라 로마 바티칸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당시 교황(敎皇) 요한 23세는 10월 23~24일 밤을 새워가며 서한 한장을 만들어 케네디와 흐루시초프에게 보냈다. "국가 지도자들은 평화를 외치는 인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세계를 파멸(破滅)로 이끌 수 있는 무력사용 자제를 강력히 촉구하는 메시지였다.

그 다음날 소련의 공산당기관지인 프라우다지 1면엔 "인류의 외침에 귀를 막지 말라"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10월28일 소련이 미사일기지 작업을 중단하고 철수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일단락됐다.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回勅)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는 이런 배경 아래서 탄생했다. 1963년 4월11일 반포된 회칙은 사상 최초로 가톨릭 신자들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선한 뜻을 지닌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특히 이 회칙엔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무자비함을 직접 체험한 교황의 절절한 '평화 염원'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전 세계를 공감시켰다.

요한 23세는 '지상의 평화'에서 "결코 평화는 '무기라는 힘'의 균형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 국가가 무기를 보강하면 다른 국가들도 보강하고, 한 국가가 원자(핵) 무기를 생산하면 다른 국가들도 더 파괴적인 무기를 생산하는 악순환(惡循環)이 계속된다는 것. 그 결과 인간들은 일순간에 세상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될 수도 있는 위험한 악몽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경제와 사회를 파괴시키며, 도덕적 탈선과 혼란을 야기하는 세계대전의 불행이 인류 가족에 세번째로 닥치는 것을 결코 허용해선 안된다."

'지상의 평화'란 회칙이 반포된지도 올해로 딱 50년이 되었다. 반세기란 긴 세월이 흘렀건만 우리는 오늘도 불안한 악몽(惡夢) 속에 살고 있는 중이다. 핵 개발 등 군비경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우리 대한민국이 있다.

최근 들어 외신(外信)들은 "북한의 핵공격 위협으로 조성된 한반도의 긴장이 반세기 전 쿠바사태 때와 같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 역시 북한의 위협과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쿠바 미사일 위기와 흡사하다며, 특히 미국이 최첨단 F-22 랩터 스텔스 전투기 등을 한반도 상공에 출격(出擊)시킨데 대해 북한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 주목하고 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라는 경구(警句)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불안과 위기감은 여전히 가시질 않고 있다. 그러기에 평화(平和)와 인간 존엄을 역설한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는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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