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때론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편지 역시 마찬가지다. 지식인의 양심을 일깨우며 세계사를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도 한 통의 편지에서 비롯됐다. 1894년 9월 프랑스 참모본부는 파리주재 독일대사관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입수했다. 발신인이 없는 편지엔 프랑스 육군의 기밀문서 명세가 적혀 있었다. 반(反)유대주의 정서가 팽배하던 시절이라 프랑스군은 필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유태인 포병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스파이로 지목해 종신형을 선고했다. 드레퓌스가 무죄를 주장하는 가운데 1년 후 진범(眞犯)이 밝혀졌지만 은폐에만 급급한 군부는 오히려 범인을 무죄 방면하기에 이른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프랑스 사회는 유태인에게 반감을 가진 다수의 대중과 소수의 지식인 그룹으로 양분된다. 그러나 소설가 에밀 졸라가 신문에 기고한 '나는 고발한다'라는 편지가 분위기를 반전(反轉)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이후 여론은 반정부로 돌아섰으며, 마침내 1906년 7월 드레퓌스는 무죄(無罪)를 선고받았다. 장장 12년에 걸친 싸움이었다. 그리고 역사는 이를 '양심적 지식인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 자와하를랄 네루의 편지는 외동딸의 인생과 조국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그는 옥중생활을 하며 당시 열 세살이던 딸 인디라 간디에게 2년 반동안 편지를 보냈다. 네루의 편지는 그 어떤 탄식도 없이 담담하게 인류의 역사와 고대문명, 그리스·로마 등으로 채워졌다. 딸은 부친의 편지를 통해 세계사와 조국의 현실에 눈을 뜨고 인도의 수상까지 된다. 네루가 쓴 196통의 옥중서신은 이제 그 유명한 '세계사편력'으로 남아 있다. 최근 제주지역에선 어느 교장선생님이 수능을 앞둔 고3 제자들에게 쓴 편지가 화제다. 현재 신성여고 교장을 맡고 있는 남승택 신부(神父)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남승택 교장의 편지쓰기는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목생활을 위해 학교를 비운 시간을 제외하고 6년(2004~2006년, 2011~2013년) 동안 쓴 편지만 무려 2400통에 달한다. 처음엔 작은 엽서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편지지 한 장을 꽉 채운다. 학생들과의 직접 상담을 통해 진로나 고민거리 등 그만큼 알게 된 사연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메모를 꼼꼼하게 한다지만 저마다 다른 내용의 편지를 수백 통이나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야기 나눔을 통한 소통(疏通)의 인성교육'이란 뚜렷한 가치관과 성직자로서의 소명의식이 있었기에 어쩌면 가능했다. 남 교장은 올해도 어김없이, 상담에서 만난 386명의 얼굴을 떠올리고 메모를 참고하는 가운데 숱하게 날밤을 지새우며 편지를 썼다. 그리고 이달 5일 담임 교사를 통해 학생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전달했다. '사랑하는 OO에게'로 시작된 한 편지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말아요. 삶이란 친구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벌이는 장기 레이스와 같지. 진정한 경쟁은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나만의 색깔과 열정을 찾아보는 것이 아닐까. 자신에 대해서 굳센 믿음을 갖고 한걸음씩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걸어가기를 기도한다." 편지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중한 끈이다. 인터넷 등의 발달로 잊혀져 버린 편지를 통해 우리 서로 따뜻한 마음과 희망을 나눠보면 어떨까. <논설실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