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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당굿
[제주당굿 기록](13)하모리 영등굿
"해녀 바다에서 태어나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운명"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입력 : 2013. 08.01. 00:00:00

▲3년마다 음력 2월 10일이면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어촌계 사무실에서 영등신을 맞이하는 영등굿이 열린다. 제주도의 바람코지인 모슬포는 바람이 많고 땅이 척박해 이 마을 여성들은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데 90살이 넘어도 자신의 바다로 나갈 수만 있다면 '할망바당'으로 나가 물질을 계속한다. 이러한 하모리 해녀들의 모습은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제주 여인의 표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김명선기자

바람 많고 토양 척박한 모슬포서 3년마다 영등굿 열려
90살 이상 해녀 3~4명 아직도 물질… 제주 여성의 표상


제주도의 '바람코지(곶)'인 모슬포.

모슬포는 추사 김정희 등 학자와 정치인들이 유배됐던 조선시대 최악의 유배지였고, 구한말 항쟁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모슬포 주변에는 아직도 당시의 상흔이 존재하고 있는 역사박물관이다.

사실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는 바람이 많고 토양이 척박해 '못살포'라고 할 정도였다.

90살이 넘어서도 물질을 멈추지 않는 해녀들의 삶은, 척박한 환경을 일구면서 살아왔던 제주 여인의 표상이기도 하다.

모슬포가 위치한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는 현재 약 90여명의 해녀가 물질에 나서고 있다. 등록된 해녀의 수는 200명이 넘지만, 나이가 들고 몸이 아파서 물질을 못하는 이가 많다고 한다.

영등신이 제주를 찾는 시기인 음력 2월 10일이면 이곳 해녀들은 3년마다 영등굿을 한다. 22년전까지만 해도 서귀포수협에서 영등굿이 열렸는데, 가지를 갈라온 후에는 3년마다 한번씩 개최하고 있단다.

해녀들이 영등굿을 준비할때는 온갖 정성을 들여서 상을 차리고, 인정도 거는데 물질해서 모은 돈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매년 지극정성을 들이는 것이 힘들어 3년마다 굿을 열고 있단다. 올해 하모리 영등굿은 고탁현 심방이 처음으로 집전했다.

이지연(59) 하모리어촌계 잠수회장은 "하모리 해녀들도 매년 신에게 정성을 못들이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그래도 가장 높은 곳(영등굿이 열리는 하모리어촌계 사무실이 건물 3층 높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서 굿을 하기 때문에 다른 어느지역과 비교해 신과 소통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며 "신도 해녀들이 거친 바다에서 물질을 해서 모은 돈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에 3년마다 굿을 열어도 정성은 다른 지역에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하모리어촌계 소속 해녀들 중에서도 90살이 넘은 3~4명의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다. 이들은 매일같이 하루평균 1~2시간 정도 바다에 들어가 물질을 한다. 소라 등을 잡고 손에 쥐는 돈은 고작 5000~1만원 정도이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온단다.

그녀들이 물질에 나설때마다 근심어린 표정으로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 마을의 어촌계장인 이광복(60)씨다. 이 계장은 "날씨가 궂은 날에도 이 분들의 물질은 멈추지 않는다. 70~80년을 물질만 하면서 살아오신 분들에게 어촌계장이 '위험하니까 바다에 나오지 마십시오'라고 하면 그녀들의 유일한 삶의 낙을 빼앗아 버리는 것 같아 말을 꺼내기가 조금 그렇다"며 "이들의 모습을 보면 해녀는 '바다에서 태어나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는 말이 생각난다면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에게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혹시나 모를 사고에도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녀들의 욕심은 종종 사고를 부르기도 한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 자신의 능력 이상의 숨을 참아가면서 전복·소라·성게 등을 채취하다보면 각종 사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날도 물질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해녀를 대상으로 심방이 '넋드리기'가 진행됐다. 넋드리기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떠한 일로 크게 놀라거나 할 때는 '넋났다'고 하고, 이것이 병이 되어 시름시름 앓게 되면 무당을 청해 넋드리는 수가 있다. 이때는 그 사람의 세 넋 가운데 일부 넋이 빠져 나간 것으로 보고 그 넋을 되찾아 담아들인다는 뜻이다.

오용자(75)씨는 "죽기 전에 상군 해녀들이 물질하는 곳에 가서 전복·소라 등을 채취하고 싶다. 나와 같은 할머니들이 물질을 하는 곳을 '할망바당'이라고 하는데 이곳보다 상군해녀들이 가는 곳이 물건이 훨씬 많기 때문"이라며 "그렇지만 지금의 생각이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나이가 들어 그곳에서는 물질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욕심이 생기는 것은 다른 해녀들도 마찬가지"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모리 해녀들은 상군 해녀들이 물질하는 곳을 '과부탄'이나 '홀어멍산'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사고가 많아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하모리 해녀들중에는 인근 가파도에서 이주해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김명자(62)씨도 23년전 이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는데 자녀들의 교육때문에 이사를 결정했단다. 하모리어촌계 어장은 인근 지역에 비해 면적이 작은데도 불구 이 마을 해녀들은 가파도에서 이주한 다른 해녀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준 것이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나눔의 의미를 알고 신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하모리 해녀들은 자연에 순응하면 살아가는 제주 해녀의 표상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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