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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하루를 시작하며]거칠 것도 없는
입력 : 2013. 08.07. 00:00:00
0형, 그 날은, "다리를 잘라야 살 수 있다"는 모 병원 의사의 진단으로 내일 아침 수술 일정이 잡힌 상태였습니다.

"형님! 절대 짜르지 맙서." 소식을 들은 막내 동생의 완강한 만류로 서둘러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 곳에선 외과, 혈관, 신경, 3인 의사의 합동 진단으로 신속하게 조치하여 주었습니다. 그 젊은 교수팀에 거듭 감사하는 마음이지요.

0형, 이렇게 내 인생의 위험한 고비를 또 한 번 넘습니다. 하늘은 내게 "더 일하라" 하신 것이니, 이제 성한 두 다리로, 거칠 것 없습니다. 3개월여 병원생활의 몸을 잠시 좀 추스르고, 바로 그 소망의 들녘으로 달려 갈 것입니다. 돌아보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나는 회생하였지만, 그때 그 상황에서 그냥 다리를 잘라낸 환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두고두고, 그 환자들의 좌절과 고통을 생각하면 실로 가슴이 미어지는 것입니다.

0형,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아들 용철이는 아침 5시에 일어나 12인승 스타렉스 일꾼들을 농장으로 실어 나르고 돌아와서 출근했습니다. 일과가 끝나는 오후 5시엔 아내가 손녀를 보고, 며눌애가 그 인부들을 실어오곤 하였지요. 토요일 일요일은 으레 용철이가 들어서서, 제반 농장업무를 총괄하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귤묘목 굴채, 판매, 식재, 접목, 전정, 시비 등 그 많은 일들을 과연 '나 없이 감당해낼 수 있을까?'에 이르면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병실에 앉아 전화로만 작업지시를 해야 하는, 그 마음이 오죽하였겠습니까? 이렇듯, 비상체제의 총력전으로 꾸려간 석파농산(石播農産). 그 간판을 내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한시도 떠나지를 않았어요.

0형, 이제는 무사히 돌아와, 농장 길을 걸어봅니다. 그토록 사무치던 그 길을 천천히 걸어봅니다. 그 농장들의 손을 꼭 잡으며, 어깰 다독이며 곰곰이 살펴보는 것이니. 나 있을 때 못지않게 관리가 잘 돼 있어요. 마음이 놓입니다.

0형, 아들의 후계자 수업은 이렇듯 예기치 않게 이뤄졌고, 그 자질 또한 충분히 검증된 셈이지요. 후계자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어느 모로 보나, 정은이보다야 우리 용철이가 몇 곱 나아요.

병원 휠체어에 나앉아서 수술실로 실려 가는 숨 가쁜 노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머잖은 나의 미래를 덤덤히 본 것이지요. 드러누워 100살사 무엇입니까? 활동하면서, 아내 자식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100살이어야 비로소 그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건강, 그 소중함을 뻔히 알면서도, 소홀해지기 쉬운 게 바로 그 건강입니다. 이번 나의 경우도, 발가락 하나 조금 다친 걸 방치했다가 생긴 일이었 듯이요.

건강, 어떤 이는 "술 안 먹으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느냐"고 목청 높이지만, 과연 술 먹어서 무슨 재미가 그리 많던가요? 나도 술을 많이 마셨지만, 가히 선수급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술 취한 다음 날 새벽, 일꾼들을 싣고 농장으로 가는데 자꾸 졸리는 거였어요. 이거 이러다간 큰 일 나겠다 싶어, 술을 끊은 것입니다. 그렇게 홀가분하고 편할 수가 없어요. 아내에게 잔소리 들을 일도 없거니와 술 깰 무렵의 그 속쓰림 등을 떠올리면 지금도 끔찍합니다.

0형, 숭어 튀면 복쟁이도 튀듯 어느 좌석에서 한기팔 시인이 "저 사름도 술 끊어불고, 용길이도 끊으켄 허난 나도 이젠 끊어불카 헴서" 하길레 "술은 아무나 끊는 게 아니우다" 했어요. 술이란, 넘어가는 말처럼 쉽게 끊어지는 게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뼈를 깎는 내공이 수반되는 역사(役事)이기 때문이지요. <강문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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