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김계춘 칼럼
기우제(祈雨祭)에 담긴 뜻
입력 : 2013. 08.13. 00:00:00
비에 대한 관심은 '단군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웅(桓雄)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올 때, 풍백(風伯)·운사(雲師)와 함께 우사(雨師)를 대동했다. 그만큼 농경사회에 있어 비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또 조선 말기의 문신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林下筆記)'엔 '태종우'에 대한 유래가 나온다. 태종 이방원이 승하하던 해 가뭄이 몹시 심하게 들었다. 태종이 근심하여 이르기를 "날씨가 이와 같이 가무니 백성들이 장차 어떻게 산단 말인가. 내가 죽어 혼이 있다면 기필코 비를 내리게 하겠다." 그가 죽자 정말 비가 내렸다. 이것이 태종의 제삿날(음력 5월10일)이면 비가 내린다는 '태종우(太宗雨)'의 유래다.

가뭄은 순전히 자연기후 현상이다. 그럼에도 옛 왕들은 '치자(治者)의 부덕(不德)'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여겼다. 가뭄이 계속되어 오곡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린 사례는 무수히 많다. 왕 스스로도 자신의 부덕과 실정으로 인해 한발(旱魃)이 든 것으로 생각해 다양한 속죄 의례를 거행했다. 기우제(祈雨祭)도 그 일환이었다.

지난 10일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에선 '가뭄 해소를 위한 합동기원제'가 열렸다. 이날 기원제에는 천주교·불교·기독교·원불교·유교 등 도내 5대 종단(宗團)이 동참했다. 물론 세속의 '기우제'와는 다른 형식이었지만 "비를 내려달라"는 마음만은 똑같았다. 그리고 그 이면엔 도민들의 가뭄 극복의지를 하나로 모으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지금 제주지방은 유례없는 폭염(暴炎)에다 한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최악의 가뭄으로 온 섬이 타들어가고 있다. 이미 마음 속에 피멍이 든 농민들은 마른 하늘만 쳐다보며 망연자실 일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가뭄 초기 생육 부진에 시달리던 콩 등 일부 농작물은 말라 죽어가고 있다. 국내 당근 최대 주산지인 구좌 등 동부지역은 발아(發芽)가 제대로 안돼 폐작 위기로까지 몰렸다.

노지감귤도 물 부족으로 열매가 크지 않아 소과(小果) 발생 증가 등 작황이 매우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식장 또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서귀포시 한 양식장에선 광어 30만마리가 폐사했다. 양식장으로 유입되는 고온의 바닷물로 인해 산소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도내 중산간 마을은 격일제 급수가 이어지면서 주민들이 이중고에 허덕이는 중이다. 특히 중산간에 위치한 일부 펜션과 음식점 등은 물이 없어 관광성수기인데도 불구 아예 영업을 포기하는 사례마저 늘고 있다. 폭염 피해도 잇따라 한라산을 오르던 한 관광객은 열사병 증세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

현재의 폭염과 가뭄을 천재(天災)라고 치자. 그러나 하늘만 쳐다보며 농사를 지어야 하고, '물과의 전쟁'을 두달째 벌이고 있는 현실은 인재(人災)에도 해당된다. 그런데도 제주자치도를 비롯한 행정당국은 가뭄 극복 등을 위한 노력보다는 거센 논란이 예견되는 '행정체제 개편 도민보고회'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그 옛날 기우제를 지냈던 조상들의 마음 속엔 어려움을 당했을 때 서로 도와 극복해 나가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비록 '치자의 부덕'은 아닐지라도 기우제에 담긴 숨은 뜻은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논설실장>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