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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학생들은 친구를 학원에서 사귄다고 한다. 초등학생부터 학원을 다닌 덕인지 다들 공부도 잘하고, 똑똑해 보인다. 이런 학생들이 대학에 오면 아마 아인슈타인도 가르칠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니…. 하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어리다고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삶의 방식이 정해지고, 마치 누군가 정해진 길을 따라 가려고 한다는 점이다. 잠재력이나 창의성도 엿보이는데, 발휘되지는 않은 그런 느낌이다. 학생 시절에 키워주어야 할 것이 창의력과 잠재력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창의력과 잠재력은 인간의 자율의지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을 때 그런 힘이 생기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누구나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단 시간의 문제가 달려있다. 이 빡빡한 시간 때문에 부모는 늘 학생의 삶과 결정에 끼어든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 사회 및 교육제도와 복잡하게 얽혀있다. 창의성은 나오는 순간부터 이미 구닥다리가 되기에 기본적으로 교육할 수 없다.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는 창의적이지만 이제 그 누가 그것을 창의적이라고 하는가? 그래서 창의성은 어쩌면 타고나거나 스스로 깨우치는 수밖에 없다.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실패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듯이 실패는 성공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학생의 순간적인 성공을 위해 다시 다른 존재가 끼어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패는 영원히 실패로 머문다. 실패는 되돌아보고 재시도하는 에너지로 전환될 때 성공할 수 있다. 학원식으로 가르치는 방법의 한계가 바로 정직한 실패를 가로막는데서 오는 것이다. 만들어진 성공을 누리느라 실패를 겪어보지 못한 학생들 대부분은 자유로운 공간을 만났을 때 일종의 공황장애를 느끼는 것 같다. 20살이나 넘은 친구들이 '뭘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라든지 '그 다음 어떻게 해요'와 같은 질문을 할 때면 먹먹한 슬픔이 가슴을 저민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의 뇌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가 관대한 분야는 생각 외로 많다. 예술인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그 이면에는 수많은 실패가 깔려있다. 불 끄고 떡 썰던 석봉의 어머니가 실패한 아들의 붓을 꺾어 버렸다면 우리가 지금 한석봉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 운동선수들 역시 그렇다. 평생 축구만 했다던 축구선수들도 수많은 패스미스를 하고, 1골에 열광을 한다. 야구선수들도 3할을 치면 훌륭한 선수라고 하는데, 3할타율은 이미 7번의 아웃을 포함한다. 즉 실패가 더 많음에도 그 성공을 인정하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교육은 그렇지 않다. 한 학생들의 실패가 바로 서열화된 사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며 살고 있는가? 노력하면서도 창의적일 수 없는 것은 실패했을 때 떠 받쳐줄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없기 때문이다. 두렵기에 무한도전이 불가능하고, 이에 따라 창조적인 사고가 민멸되고 만다. 우리 사회가 한석봉의 어머니가 될 수 없을까? 우두커니 앉아 정직한 실패를 기다릴 수는 없을까? <김새미오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강사>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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