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강혜심 제주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오랜만에 부모님이 지인의 병문안을 위해 딸의 근무하는 병원을 찾았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병원근처 식당에서 식사하던 중 전화가 왔다. 방금 병원에 온 산모가 진행이 너무 빠르다는 전화다. 한번 분만을 했던 경산모는 진행이 아주 빠를 수 있어 다급해진 나는 그냥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병원까지 뛰어서 5분, 나의 도착과 함께 산모는 분만실로 옮겨지고 조금 뒤 한 생명의 울음소리가 들린 후에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밥도 못 먹고 일한다며 딸 걱정에 부모님은 한 숨을 쉬었다. 매일 이렇지는 않고 모든 산모가 이렇게 진행이 잘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가족과 식사를 하다가도 또는 늦은 시간 잠을 자다가도 전화 한통에 병원으로 뛰어간다. 병원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환자의 목숨을 다투는 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중증외상환자는 1시간, 뇌졸중환자는 3시간이지만 산모의 골든타임은 그렇게 기다려주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왜 산부인과를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일단 아기가 태어나는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 울음에 기뻐하는 엄마와 가족을 만나면 "그래 이 맛에 산부인과를 한다"며 뿌듯해 한다. 아직은 새 생명이 탄생하는 그 순간 맥주광고처럼 나도 살아있음을 느끼고 행복해진다. 산부인과 의사를 하며 많은 기쁨의 순간을 함께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 산모는 전공의 시절 만났던 '아이젠멩거증후군' 환자였다. 심장병인 아이젠멩거 증후군은 너무 위험해서 임신은 하지 말아야 하고 혹 임신했어도 엄마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어 임신 중절도 합법적이다. 그런데 가족과 내과, 산부인과 의사까지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산모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의사에게 그렇다고 내 아이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모두의 관심 속에 시간이 흐르고 산모는 만삭에 제왕절개수술로 예쁜 딸을 낳았고 일주일이 지나 퇴원을 준비하던 그녀는, 그러나 갑작스런 심장기능 이상으로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의사의 역할은 우리가 갖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설명하고 환자가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선배의사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부부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는지 의사이기만 했던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주 조금 더 이해하고 더 가슴 아플 뿐이다.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뉴스는 날마다 나오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목숨을 걸고 생명을 낳는다. 그래서 나는 때로는 기쁘게, 때로는 아프게 그 순간을 함께한다. 엄마들의 힘과 사랑으로 아이를 낳는 동안 어쩌면 나의 역할은 작은 도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사히 아기의 울음이 들리는 그 순간 나는 무겁게 행복해진다. <강혜심 제주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