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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
입력 : 2013. 11.11. 00:00:00
지난 11월 9일(1989년)은 독일통일의 직접 계기가 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이다. 이후 급격한 변화의 물살을 거치면서 동·서독이 하나가 된 때가 1990년 10월 3일이다. 잘 알려진 대로 독일통일은 주민의 자유로운 뜻에 따라 이뤄진 민주적(民主的) 통일이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평화적(平和的) 통일이요, 주변국의 동의를 받아 이뤄 낸 통일이라는 점에서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불리운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축하의 박수를 보내면서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사실 동·서독은 남·북한에 비해 통일여건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우선 독일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역사의 부채 때문에 '통일'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못했다. '통일정책' 대신에 '내독정책'이라는 용어를 써야했다. 또 동독지역에는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군사동맹인 바르샤바조약기구 규정에 따라 소련군 38만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조약(1952년) 등으로 통일을 하는 데는 2차 대전 전승국(戰勝國)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의 동의가 필요했다. 다행히 남·북한에는 이런 장애요인은 없다.

여러 제약을 극복하고 이룩한 독일통일에서 알아야 할 것이 많다. 먼저 동·서독 간에는 정보교류가 거의 무제한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동독 주민의 서독TV 시청, 서독 주민의 동독 왕래, 서신교환 등이 자유로웠다. 특히 서독TV는 외부정보의 전달자·교육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다음으로 서독은 통일에 대한 원칙고수와 도덕성 확보를 시종일관 유지했다. 소련의 중립화 유혹과 일부 국내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親)서방 노선으로 미국의 절대적 통일지원을 이끌어 냈다. 또한 동독의 악행(惡行)을 기록하는 '중앙기록보존소'를 설치하여 통일될 때까지 30여 년간 약 8만여 건의 인권탄압 사례를 수집, 통일 후 보상 및 형사처벌의 근거로 활용했다.

남·북한으로 눈을 돌려보자. 1990년대 이후 북한 핵으로 인해 통일은커녕 우리의 안전보장이 위태로울 정도로 긴장상태가 더해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미·북간 제네바합의(1994년 10월 21일)가 있었고,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2005년 9월 19일)이 채택되었으나, 북한의 3차례 핵실험으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제네바합의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도 않으며 핵무기로 위협하지도 않는다고 공식 보장했다. '9·19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음을 중국과 러시아 앞에서 서명했다. 북한이 미국의 적대적 정책으로 인한 체제위협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 인구의 31%인 760만 명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고 발표(2013년 10월 1일)했다. 굶주리고 있는 주민 먹여 살릴 돈으로 핵개발에 몰두하는 국가를 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북한의 비정상 상태 해결 없이 북핵문제나 한반도 통일을 논(論)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다.

지금과 같은 상황 아래서 북한을 정상국가화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보자유화'가 거의 유일하다. 당신들이 철석같이 믿는 공산주의는 지구상에서 사라졌고, 미(美)제국주의 압제에 시달린다는 대한민국은 당신들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 주민에게 알려야 한다. 알지 못하면 원(願)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인권탄압·폭압정치 등 북한 내부의 진실도 외부에 알려져야 한다.

동·서독이 통일 된지 23년이 지난 지금 남·북한의 상황을 보면서 한반도의 통일을 꿈꾸는 많은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문대영 제주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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