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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건강보고서 3H
[생로병사]출근길에 울었다
입력 : 2013. 11.15. 00:00:00

이창섭 제주대학교병원신경외과

오늘 출근길에 울었다. 팔구년 쯤 되었으리라. 젊은 엄마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힘내라고 말해줄 수 있을뿐이었다. 몇 번이고 멈추었던 심장을 다시 뛰도록 되돌려 보았지만, 아이는 끝내 눈을 감았다.

의사 일을 한 지 20여 년이 되었다. 그간 내가 겪어내야 했던 죽음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 대략 300명, 아니 그 이상일듯 싶다.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문득 어제 일처럼 다시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내 마음을 후벼 판다.

노신사분에게는 딸이 둘 있었다. 불행히도 소생가망은 없는 상태. 내가 해줄 수 있었던 것은 부질없는 연명치료 뿐이었다. 딸들은 생각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로 숨만 쉬는 것은 아버지도 원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무얼 해야 했을까? 노신사의 장례를 마치고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우리 가족의 아픔에 동참해주시고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 "아닙니다. 아닙니다. 나는 당신에게 그런 감사의 말을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당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죄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의사들은 수많은 죽음을 겪지만 "어쩔 수 없었어"라며 넘어가는 경우가 좀처럼 드물다. 대국이 끝나고 밤새 복기를 하는 프로기사처럼, 죽은 사람의 치료과정을 되짚어보며 "이때 이렇게 했으면 좀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힘들다. 계명대 임만빈 교수님의 "내가 젊었을 때는 수술했던 환자가 잘못되면 내가 아닌 다른 경험 많은 선생님에게 수술을 받았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 '아!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일하는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가끔 물어본다. "힘들지 않으세요." "아니예요. 오히려 환자가, 수술이 없었다면 더 힘들었을 거예요. 응급실에서 저를 찾는 환자에게는 그날 일어나는 일들이 그 사람의 남은 일생을 결정하지요. 신경외과 의사들은 한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하루를 그 사람과 함께 보내야 하는 고귀한 특권을 가지고 있답니다. 이것이 제 보람이고 사명이자 의무입니다. 보잘 것 없는 제게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있었기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죽은 아이가 불쌍해서 출근길에 울었다. 아니 여지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만, 문득문득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책망해야 할 내 신세가 서러워서 울었다. 오늘따라 출근길이 어둑어둑하고 찬바람이 스산하다. 모든 것이 날씨 때문이다. <이창섭 제주대학교병원신경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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