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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춘 칼럼
'영웅' 탈 벗는 JFK와 우리의 역사논쟁
입력 : 2013. 11.19. 00:00:00
미국의 존 F. 케네디(JFK) 대통령이 사망(死亡)한 것은 지난 1963년 11월 22일이었다. 텍사스주 댈러스 딜리광장을 무개차를 타고 지나던 케네디는 세 발의 총성과 함께 그 자리에서 숨졌다. 당시 46세의 젊은 대통령의 죽음에 미국민은 오열했다. 이후 케네디는 숱한 미스터리를 낳으며 미국의 '신화(神話)'가 됐다.

뉴욕타임스(NYT)가 JFK 사망 50주년을 앞두고 지난 50년간 교과서에 기술된 케네디 평가의 변화를 추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요즘 학생들이 배우는 케네디는 그들의 조부가 배운 케네디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NYT에 의하면 사망 5년 뒤인 1968년 미국 고교 교과서는 케네디를 '비극적 종말을 맞은 진보의 아이콘'으로 기술했으며 이런 격찬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 이같은 분위기는 급격히 바뀌었다. 그 바탕엔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재평가가 자리잡고 있다.

98년 교과서는 쿠바 사태시 핵전쟁 위기를 부추긴 케네디를 영웅(英雄) 취급한 것이 성급했다고 수정했다. 또 2009년 교과서는 미국 코 앞에 공산 쿠바를 유지시키고 소련의 군비 확장을 자극한 굴욕적 사건으로 폄하했다. 베트남전과 관련된 역할도 전쟁을 확대시킨 '냉전(冷戰)의 전사'로, 민권에 관심이 많은 이상주의적 정치인이란 평가 역시 '차가운 현실 정치인'으로 바뀌었다.

이런 결과로 인해 지난 88년부터 2000년까지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 1위'(갤럽 조사)로 꼽혔던 케네디는 근래엔 4위로 처졌다. 로널드 레이건과 에이브러햄 링컨은 물론 빌 클린턴에도 밀려났다. 그렇다고 케네디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JFK가 '영웅의 탈을 벗고 보통사람'으로 돌아온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최근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관련 '공칠과삼(功七過三)'을 언급해 큰 주목을 끌었다. '공칠과삼'은 중국의 덩샤오핑이 지난 1980년 마오쩌둥 격하(格下) 움직임 때 내놓아 이를 무력화시킨 비책이다.

안 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강력한 리더십도, 그의 죽음도 국민의 용인하에 이뤄진 것"이라며 "진보진영은 박 대통령이 1963년, 1967년 대선에서 선출됐다는 사실을 역사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공적을 아무리 찬양해도 '공칠과삼'을 넘지 않는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3일 출간된 그의 저서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를 통해서다. 안희정 지사는 친노(親盧)세력 핵심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지난해 12월 진보성향의 민족문화연구소가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공개했다. 이 다큐에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국 꼭두각시'로,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와이안 갱스터'로 묘사해 역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서 불붙은 진보와 보수(혹은 좌파와 우파)의 역사 논쟁은 이후 역사(歷史)교과서 문제를 거치며 전 사회적인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심지어 연예인 말 한마디에도 정치해석이 난무할 정도다.

이 과정에서 맞짱은 있었으나 토론은 없었다. 생산적인 논쟁이 없는 대신 편가르기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양측 모두 본질을 벗어난 '진영(陣營) 논리'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권이 그 중심에 있으면서 역사를 퇴보시키고 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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