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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우 제주대학교병원 신장내과> 고대 로마시대에는 많은 신들이 존재했던 다신교의 시대였다.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정치체제가 바뀐 후에는 황제를 지낸 사람들도 사후에 신으로 모셨으니, 신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만 갔을 것이다. 신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은 인간인 자신들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신 가운데 비리프라카 여신에게 관심이 갔다. 비리프라카 여신은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따르면 비리프라카 여신은 부부싸움의 수호신이라고 한다. 싸움을 중재해 주는 신이다.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은 이렇다. 남편과 아내의 말다툼이 시작된다. 둘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장하는 목청도 점점 높아진다. 잠자코 있으면 진다고 생각하니까. 말싸움이 커져 그만 저도 모르게 주먹이 나갈 뻔 하지만 꾹 참고 둘이 비리프라카 여신을 모시는 신전으로 가게 된다. 이 신전에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다. 비리프라카 여신 앞에서 지켜야 할 규칙은 한 번에 한 사람씩 차례로 여신에게 호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여신에게 호소하는 동안 다른 한쪽은 잠자코 듣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잠자코 듣고 있노라면 상대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양쪽이 되풀이 하는 동안 흥분했던 목청도 조금씩 가라앉고, 결국에는 사이좋게 신전을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로마제국이 다신교 사회에서 일신교 사회로 바뀌면서 비리프라카 여신도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반목과 이해의 충돌을 조정해 줄 어떤 무언가도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진료실 밖에서 언성 높여 항의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진료가 지연됐기 때문일 것이다. 진료가 늦어지면 사람인 이상 짜증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부러 환자를 늦게 진료하는 병원은 없을 것이다. 피치 못 할 사정이 있는 지 들어보고 그래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그 때 언성을 높여도 좋을 것이다. 무턱대고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한다는 점이다. 비리프라카 여신상 아래에 있었다면 여신으로 부터 엄중한 '옐로우 카드'를 받았을 것이다. 요즘에도 비리프라카 여신상이 꼭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환자의 말을 듣기 보다 일방적으로 통고하듯 말을 하고 나서 후회할 때가 종종 있으니 말이다. 비리프라카 여신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잘 이뤄졌던 일이 2000년이 지난 현재는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창한 신전과 아름다운 여신상은 이제 사라지고 없지만 비리프라카 여신의 신전에서 꼭 지켜야 하는 그 한 가지 규칙만이라도 가슴 속에 새긴다면 현재 우리가 진료 현장에서 겪고 있는 오해와 갈등도 조금은 줄어들 것 같다. <김현우 제주대학교병원 신장내과>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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