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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하루를 시작하며]원도심 재생의 철학과 원칙
입력 : 2013. 12.04. 00:00:00
2013년 새해 아침이 엊그제 같은데 연이은 송년행사의 메모가 책상 위 달력에 가득하다.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음에도 마무리해야 할 일은 즐비하고 시간은 염치없이 사라진다. 순간에 사라지는 시간들이 삶이라 생각하면 허무의 공허함마저 몰려온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인간들은 이 공허함과의 치열한 투쟁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것 일지도 모른다. 이때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도시 공간과 그 안에 누적돼 있는 시간성으로 이뤄진 좌표, 일상의 흔적과 기억은 우리들의 존재에 대한 정위를 찾는데 절대적 도움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도시 안에서 삶의 실체인 '일상'에 주목한다.

개발의 시대에 탄생하거나 변형된 현대도시들에선 이러한 좌표계가 혼돈스러워져, 도시민들은 자신의 존재는 물론 정체성마저도 흔들리는 위기에 놓여있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가 도시마다 처한 숙명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도시에 대한 여러 연구들이 있어 왔지만 도시를 일상이 축적돼 있는 유기적 복합체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연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처음 접한 것은 2007년 건축가들과의 스페인 여행에서다. 우리 일행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에 인접한 해안마을인 포트보우에서 발터 벤야민 사후 50주년을 기념하는 대니 카라반(Dani Karavan, 이스라엘출신의 조각가)의 '통로(Passages)'라는 설치 조형물을 체험하게 됐다. 벤야민을 접할수록 그의 사상과 연구가 현대의 도시이론과 예술이론에 미친 엄청난 영향에 심취하게 됐다. 특히 그의 연구 중에서도 현대도시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개념은 '다공성(porosity)'이라 할 수 있다. 다공성은 도시민들이 일상이 축적돼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상호 침투해 발생되는 무정형의 복합체적 성질을 의미한다.

제주의 원도심은 어떠한가. 원도심을 거닐어 보면 파편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옛 도시공간 안에서 다공적 풍경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울담을 공유하는 지간거리의 앞뒷집이면서도 다른 올레를 입구로 해 가장 먼 집이 되는 위상학적 공간구조는 공적·사적 영역의 경계가 사라진 다공적 성질을 보여준다. 또한 유기적으로 성장·변화해온 올레의 바닥과 돌담에는 지난 세월동안 제주사람들의 일상이 누적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상처를 입었지만 원도심에는 다공적 도시풍경의 회복을 통해 도시민들에게 존재의 정위를 확연히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돼 있다.

그렇다면 원도심의 재생사업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인가. 행정에서는 원도심의 도시재생 수법을 소규모 블록단위에 의한 주민주도형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수년간 정체됐던 원도심의 인프라시설에 대한 공사가 한창이다. 원칙적으로 찬성할 일이지만 먼저 도심재생의 궁극적 목표에 대한 공감대가 우선돼야 할 것이다. 또한 도시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현재의 원도심의 물리적 현황과 주민들의 일상에 대한 상세한 조사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조사연구에서 분석된 원도심의 가치를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한 사업의 철학과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 아래 행정은 주민주도에 의한 소규모 단위별 세부적인 사업계획이 원칙에 부합될 수 있도록 사업시행의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심재생의 방식으로 주민주도의 자율적 원칙을 세워놓은 지금 이러한 사전준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최근 원도심엔 한 건물의 철거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이 역시도 원도심에 대한 철학과 합의와 원칙이 부재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할 수 있다. 2013년의 말미, 시간의 공허함에 빠져 상처 입은 원도심을 산책하게 된다.<양건 가우건축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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