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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2월 중순, 이제 크리스마스(Christmas)도 얼마 남지 않았다. 비록 상술(商術)에 의해 크리스마스의 본질적인 의미가 퇴색됐다고는 하나,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追憶)들은 오십 중반을 넘어선 필자에게도 아직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 씰'에 대한 추억도 그 중 하나다. 손편지가 한창이던 60~70년대 학창 시절, 우리는 카드나 연하장 등에 우표 외에 꼭 크리스마스 씰을 함께 붙여 보냈다. 그 어려웠던 시절 얼마를 주고 씰을 구입했는지는 기억이 가물하다. 하지만 선생님의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설명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것은 남을 위해 베푸는 조그만 정성이기도 하거니와, 당시로선 자신의 품격을 보여주는 '멋'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씰이 결핵퇴치를 위한 성금 운동이었다는 것, 그리고 운동이 펼쳐지게 된 사연 등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 유래(由來)는 다음과 같다. 산업혁명 이후인 19세기 말, 결핵이 전 유럽에 만연했다. 덴마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 직원이었던 '아이날 홀벨'은 많은 어린이들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며 크게 안타까워 했다. 그 때 그의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연말에 수북히 쌓이는 크리스마스 우편물에 동전 한 닢짜리 '씰(seal)'을 붙여 보내도록 한다면 판매되는 동전을 모아 결핵기금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아이디어에 국왕인 '크리스찬 9세'가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마침내 1904년 12월10일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이 발행됐다. 그의 소박한 발상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참여를 불러 일으켰으며, 주변국들에 널리 퍼지면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빛을 발하게 된다. 한때 크리스마스 씰은 결핵퇴치(結核退治)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초중고 학생을 비롯 국민들의 참여 열기도 뜨거웠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손편지가 자취를 감추면서 크리스마스 씰에 대한 인식도 크게 줄었다 한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씰에 스티커 방식을 적용하고 모바일 씰 등 모금 방법을 다양화하고 있지만 시들해진 관심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결핵은 기원전 7천년경 석기시대 화석(化石)에서도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오래된 전염병이다. 고대 인도 아리아베다교 성전에 '모든 질병의 왕'으로 기록될 정도로, 결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흔히 결핵(結核)을 후진국병이라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 3명 중 1명이 '잠복결핵 감염자'로 추정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신고된 결핵환자만도 무려 7만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10대와 20대 환자도 부쩍 늘고 있는 중이다. 이로 인해 OECD 국가 가운데 결핵 발병률과 유병률, 사망률 최상위 국가란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동안 정부 등 관계기관이 쉬쉬하며 병을 키워 온 결과다. 현재 결핵환자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웃들이다. 전염병임을 감안하면 그 누구도 안심할 계제가 아니다. 이같은 결핵을 퇴치하려면 모두가 힘을 모을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 씰' 구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담배 한 갑, 커피 한 잔값만 아껴도 동참(同參)이 가능하다. 우리의 작은 정성을 보태면 올 크리스마스를 한층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논설실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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