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김계춘 칼럼
'안녕들 하십니까…?'
입력 : 2013. 12.24. 00:00:00
대자보(大字報)의 사전적 의미는 대학가나 단체에서 자신들의 주장 혹은 홍보를 위해 큰 글자로 써서 붙인 게시물을 뜻한다. 일종의 벽(壁)신문이다. 1960년대 마오쩌뚱이 수십만명의 홍위병을 선동하며 중국을 '문화혁명 광풍(狂風)'으로 몰아넣을 때 활용한 것도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대자보였다.

이름만 다를 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자보'는 존재했다. 먼 옛날부터 중국에도 있었고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신라 때 출현해 조선후기에 널리 유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로 집권층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벽에 붙여두면 벽서(壁書), 기둥 같은 데 걸어두면 괘서(掛書)라 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 로마의 카이사르도 '대자보'를 적극 활용했다고 한다. 1871년 파리코뮌과 1917년 러시아 혁명 또한 길거리 벽보에서 시작됐다.

이달 10일 고려대에 나붙은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가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단순한 화제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27세 경영학과 재학생이 손글씨로 쓴 이 대자보는 밀양 송전탑 문제와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철도 파업 등을 거론하며 현 정부를 성토하는 한편 대학생들의 현실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이 글은 내용의 진위(眞僞)를 떠나 급속도로 확산되어 전국의 대학생과 고교생은 물론 SNS까지 두루 번지며 '대자보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자보의 제목인 '안녕들 하십니까'란 말은 이제 일상의 화두(話頭)가 되어 버렸다. 컴퓨터와 SNS 시대에 대표적 아날로그 수단인 대자보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으니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대자보는 우울한 시대상을 반영해왔다. 이번 대자보 역시 국민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지 않는 박근혜 정부의 '불통(不通)'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안녕들 하십니까'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두 갈래로 존재한다.

첫 번째는 취업전선에만 매몰되어 정치·사회적으로 무관심하던 대학생들의 현실 참여는 건강한 민주사회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다. 다른 하나는 다소 감상적이고 비논리적인 접근에서 촉발된 상충(相衝)과 갈등(葛藤)이 사회분열이란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불편한 시각이다. 최초 대자보 작성자인 고대생이 과거 진보신당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진보·보수로 나뉘어 이념공방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은 단적인 예다.

대자보는 정치권 등 사회지도층이 제 역할을 못할 때 발현하고 그 힘을 발휘한다. 현재 '대자보'를 퍼나르며 확산시키고 '제2의 촛불' 운운하는 언론도 그 범주에 속한다. 대자보가 횡행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이며, 누구보다 '진영(陣營)의 논리'에 함몰된 위정자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 특히 '자기 검열(檢閱)'에 파묻힌 언론 또한 뼈아픈 각성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

청와대를 비롯한 현 정부도 사사건건 발끈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과의 소통(疏通)의 폭을 적극 넓혀 나가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네 탓이 아닌 내 탓'이란 인식과 함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조선시대 명군(名君)인 정조는 자신에 대한 비방 벽서가 붙자 "과인이 정치를 잘하면 저 벽보는 당연히 없어진다"고 말했다 한다. 그 속엔 괜한 공권력 동원이나 색출조치를 삼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시대 위정자(爲政者)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안녕들 하십니까?'

<논설실장>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