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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춘 칼럼
'倒行逆施'로 마감한 2013년
입력 : 2013. 12.31. 00:00:00
교수신문은 2013년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제구포신(除舊布新)'을 선정했었다. 중국의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나오는 말로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난 1년은 우리의 희망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던 것 같다. 교수신문이 올해를 마감하는 사자성어로 '도행역시(倒行逆施)'를 택했기 때문이다.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을 지닌 이 말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오자서 열전'에 나온다.

오자서(伍子胥)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인물이다. 원래 초(楚)나라 사람이었던 오자서는 그의 아버지와 형이 초나라 평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오(吳)나라로 도망쳐 합려의 신하가 된다. 마침내 초나라를 공격해 멸망시킨 오자서는 원수를 갚고자 이미 죽은 초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꺼내 채찍으로 300번이나 매질을 했다고 한다.

한때 그와 친한 친구였던 신포서가 그런 행위를 질책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오자서는 "해는 지는데 갈길은 멀어서(日暮途遠) 도리에 어긋나는 줄 알지만 부득이하게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吾故倒行 而逆施之)"고 답했다. '도행역시'의 유래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육영수(이름이 묘하다?)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는 정책·인사 등을 염려하고 경계한다"고 말했다. 미래 지향적인 가치를 주문하는 국민의 여망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과거 회귀적인 모습을 보이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에 다름 아니다.

교수신문은 도행역시에 이어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격'이란 '와각지쟁(蝸角之爭)'과 '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힌다'는 의미의 '이가난진(以假亂眞)'을 2위와 3위로 선정했다. 그만큼 올 한해가 달갑지 않은 일을 갖고 싸우는 등 난마에 휩싸인 1년이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지난 성탄절 때 '메리 크리스마스'란 영화를 비디오를 통해 감상했다. 실화(實話)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6개월에 접어든 1914년 12월24일 프랑스 북부 독일군 점령지역이 무대다. 100m도 안되는 거리를 두고 독일군과 프랑스·영국군이 치열하게 대치하던 전선(戰線). 성탄 전야를 맞아 잠시 총성은 멈췄지만 살벌하고 몹시도 추운 전쟁터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병사들의 마음은 착잡하고 스산하기만 했다.

이때 독일군 진지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란 노래가 잔잔히 울려 퍼진다. 이에 화답하듯 영국군 진지에서도 백파이프 반주가 들려온다. 어느새 전쟁터는 캐롤의 화음 속에 파묻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독일군과 영국군, 프랑스군이 전선의 중간 지점에 모인다. 모두 총을 내려놓은 비무장 상태였다.

3개국 지휘관들이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고 하루 동안의 휴전을 결의한다. 그리고 군인들은 샴페인을 서로에게 따라주며 건배하고 "메리 크리스마스"를 합창한다. 살벌한 전쟁터에서의 '적(敵)과의 동침', 즉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적이 벌어진 것이다.

연말연시, 그 어디를 둘러봐도 반가운 소식이라곤 하나도 없다. 철도파업을 둘러싼 첨예한 대치가 계속되는 등 곳곳에서 들려오는 건 모두가 파열음(破裂音) 뿐이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참담하기 짝이 없다. '기적'은 어렵다 하더라도 정녕 서로가 눈 붉히는 상태로 밝아오는 새해를 맞을 것인가.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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