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청마(靑馬)가 달린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세찬 바람을 가른다. 쭉 뻗은 체형에 박진감 넘치는 질주의 하모니, 또 다른 한 해, 갑오(甲午)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나는 참 부지런히 살았다. 주어진 시간을 쪼개고 나누며 열심히 뛰어다녔다. 하지만 찰나처럼 빠른 세월의 가속도는 이기지 못했다. 언제 흘러갔는지 모를 삼백 예순 날의 시간들, 또 다시 먹어야 하는 나이라는 형체불명의 숫자들, 진정 두루마리 휴지처럼 무심코 풀어썼던 날들은 없었던가. 시간에 대한 아쉬움으로 뇌리를 스치는 잡다한 생각들로 복잡한 세모를 보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새로운 태양 앞에 섰다. 남태평양을 바라보며 화산섬 제주에서 또 다시 한 해를 맞이하고 있다. 푸릇한 시간들로 펼쳐진 새로운 연초(年初), 올 한 해 나는 무엇에 도전할 것인가. 신(神)의 선물처럼 주어진 수많은 날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연말에 가졌던 자잘한 고민들이 거품처럼 사라졌다. 어느새 나는 청춘의 설렘으로 당당히 서있었던 것이다. 갑오년이다. 하늘의 첫 번째 기운(甲)이 거침없는 땅, 웅대한 말(午)에 올라탄 형국, 60년 만에 찾아온 청마(靑馬)의 해라 한다. 10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과 12지지(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조화로 이뤄진 60갑자 중 31번째, 갑오(甲午) 신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어떤 기원이 이루어질까. 본디 말(馬)은 인간의 삶과 밀접했다. 토기, 토우, 벽화 등에는 신화 속에 나타났던 말의 영물적(靈物的) 형상이 잔존하고 있다. 통일신라에서 조선까지 농경, 군마, 통신 등으로 우리의 일상과 가근했던 동물, 특히 제주마(馬)는 우리 민족과 함께 생존해온 유일한 재래 가축이 아니던가. 체격이 매우 작아 과하마(果下馬)· 삼척마(三尺馬)라 불리기는 했으나 타고난 강인함으로 농경과 운송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눈이 쌓여 온통 하얗게 변한 한라산 중턱에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제주마의 풍광을 기억하는가. 영리하면서도 몸짓이 경쾌한 영주십경의 고수목마가 아니던가. 말(馬)은 역동적이다. 강한 추진력을 내포한 왕(王)의 남성성을 상징한다. 영기(靈氣)를 머금은 갑오년, 갑오년은 제주의 해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마와 중산간에 남아있는 마로(馬路), 상고시대부터 말을 키워왔던 탐라는 말의 왕국이 아니었던가. 나는 올해 청마(靑馬)를 닮은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제주섬의 고유성은 보존하면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21세기 탐라국을 재건할 장수의 출현을 기대한다. 혼신을 다해 질주하면서도 인간과의 교감을 우선하는 말처럼 강인함과 온순함을 동시에 내포한 성품의 소유자. 제주를 동북아의 허브로 구축할 행운의 유니콘 청마를 위해, 나는 새해 첫날에 축배를 든다. <허경자 수필가·서귀포문화원 부원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