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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 그것은 한 송이 꽃이었다. 굳이 미당 서정주의 국화꽃이 아니더라도 꽃은 저절로 피지 않는다. 싹을 틔우고 비바람 맞으며 숱한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군산봉엘 올랐다. 둥근 능선 위 젖꼭지처럼 오똑 솟은 바위틈에 철 지난 들국화가 힘들게 피어 있다. 씻김굿 춤사위로 세찬 겨울바람에 처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꽃은 아직 못 이룬 꿈이 남아 있나보다. 그러기에 저리도 힘들게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리라. 의지는 고픔에서 비롯된다, 고픔이 꿈의 역설이라면 억지일까? 마른 땅의 뿌리가 물기를 찾아 땅속을 파고들듯 결핍이나 고픔은 강력한 상상력과 의지로 삶의 의욕을 높여준다. 그러기에 가난은 둥지를 짓는 일, 그 둥지엔 행복한 미래가 있고 꿈이 서려있다. 1950~1960년대 유년은 배고픔의 세월이었다. 일제 이후 전쟁으로 이어지는 절대궁핍의 상황, 쌀겨와 고구마 전분찌꺼기 돼지사료로 연명하던 시절을 겪어보지 않고는 어찌 배고픔을 이야기나 하겠는가? 이후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이른바 새마을 운동으로 가난을 탈출해 이젠 누가 뭐래도 물질이 넘쳐나는 풍요로운 시대가 됐다. 가끔 배고프던 시절을 얘기할라치면 '그렇게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먹지'라는 철모른 주장엔 웃고 말지만, 핏대를 올리며 가난 극복이나 우리의 경제발전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이뤄졌을 거라는 논리엔 가슴이 섬뜩해진다. 6075 신중년 세대들에겐 어떤 정치적 편견이나 이념을 떠나 처절했던 가난탈출기가 큰 자랑이요 자부심인 것이다. 사실 고픔을 성공으로 승화한 인생사는 언제나 아름답다. 강철왕 카네기는 어린 시절 친구들의 자전거가 그렇게 부러웠다. 늘 자전거를 그리며 잠들었는데 그 가난이 자신을 최고의 부자로 만들어줬다고 늘 회고하곤 했다 한다. 피카소는 고양이가 물어온 소시지를 먹으며 그림공부를 했고, 백번 꿰맨 옷을 입을 정도로 가난했던 백결선생은 쌀이 없어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대신하며 배고픔을 달랬다는데 그 절절한 거문고 소리가 방아타령의 시초라는 이야기엔 마음이 숙연해진다. 다산은 아들에게 가난을 극복하라고 재산대신 '勤儉' 글자를 정신적 유산으로 물려줬다는 이야기는 무엇을 뜻하는가? 가난은 죄가 아니다. 성경말씀처럼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가난은 극복해야 할 시련인 것이다. 고난과 시련을 겪어보지 않는 사람이 어찌 인생을 알고 성숙할 수 있을까? 자수성가한 인생사가 칭송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픔이 어찌 물질에만 해당할까? 월드컵 4강, 히딩크의 '아직도 배고프다'는 한 마디는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줬다. 정신적 고픔! 정신적인 고픔은 더 강렬하다. 이는 오늘의 인류문명사를 이뤄 온 원천으로 우리가 누리는 모두가 고픔의 산물이 아니던가. 인류가 추구하는 물질적인 부나 과학문명, 문화 예술 창작도 고픔의 다른 모습이다. 알고 보면 고픔은 생동감이요, 삶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고픔이 없다면 배부른 돼지처럼 나태해지고 무력한 삶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고픔은 지고지선 미덕이다. 그러나 고픔이 미덕으로 작용하려면 전제가 따른다. 「너무 많은 것들」이란 앨런 긴즈버그의 시에 우리의 자화상이 들어있다. '너무 많은 음식과 비만, 너무 많은 욕심, 거짓과 폭력, 주장과 이념갈등..., 반면 너무 적은 것들엔 좁은 공간, 나눔과 배려, 용서와 겸손, 유머와 여유 등등' 그러나 더 심해지는 물질주의와 부정부패, 집단이기주의, 비인간적 행태에 가슴이 쓰리다. 결코 우리가 천박해져서는 안 된다. 배부른 돼지가 아니라 고픔을 미학으로 삶의 가치를 승화시킬 때 비로소 살맛나는 사회를 꿈꿀 수 있다. 함께 아름다운 인생을 꽃피울 일이다. <이경주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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