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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살던 과천은 자급자족을 실현하기에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춘 도시였습니다. 7만 명의 시민들 대부분이 아파트에 거주를 했고, 아파트단지만 벗어나면 너른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지요. 그래 43~50㎡짜리 아파트에 세를 살면서도 행복했습니다. 아파트단지만 벗어나면 왁자지껄한 개구리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생활수준이 높아서인지 얼마 되지도 않는 인구에 비해서 친환경농산물매장도 여러 개가 있었습니다. 어디 그것뿐인가요? 지방의 학생들이 가보기를 소원하는 서울대공원(동물원)과 서울랜드(놀이공원)가 지척인지라 틈만 나면 그곳으로 놀러 다녔고, 경마장 덕분에 시의 재정자립도도 전국에서 으뜸이었지요. 그런 혜택을 누리면서 사는데 못마땅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농민들에게 농약과 화학비료 값의 절반을 시에서 보조하는 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화학비료와 농약 값을 지원하는 대신에 시의 모든 농가를 친환경농업으로 돌리고, 오륙년 동안 농업손실을 보전해주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생산된 친환경농산물을 청사 앞의 직거래장터에서 판매하자고. 그러면 농민과 소비자 모두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며 과천에는 개구리와 메뚜기, 미꾸라지와 우렁이가 넘쳐날 거라고 했지요. 그렇게 되면 서울경기지역의 학생들이 먼 곳으로 생태학습을 가는 대신에 가까운 과천으로 올 거라고. 경마장이 뚝섬에서 과천으로 옮겨왔듯이 언젠가는 또 다른 곳으로 이전할 테니 그때에 대비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전체 7명의 시의원 중에 시민단체와 교감하는 의원이 4명이나 돼도 시장 한명을 어쩌지 못했지요. 그러다가 재개발이 시작되었고, 아파트가 고층으로 올라가는 만큼 소통대신 단절이 심화됐고, 마을공동체가 해체되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과천의제21의 활동을 접고, 제주로 이사를 왔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보자고 말입니다. 그런데 다향이가 초등학교를 2학년 1학기만 다니고 그만두는 바람에 별 활동을 하지 못했지요. 그런데 아내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도시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유·소년기에 시골생활의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다시 서울로 돌아가자고 채근을 했습니다. 새로운 꿈을 찾아 내려온 제주를 떠난다면 어디로 가야할까? 딱히 잡히는 것도, 살고 싶은 곳도 없습니다. 그래 이참에 '칠레로, 아니 꼭 칠레가 아니더라도 남미로, 이민을 가면 어떨까?'생각해 봅니다. 남북으로 긴 땅이 해안선을 끼고 있으니 값싸고 싱싱한 해산물이 많을 테고, 값싸고 맛있는 와인 또한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서 '순박하고 열정적인 사람들 - 음료수와 약간의 음식을 놓고도 몇 시간씩 춤을 추며 즐기는 사람들' - 과 함께 여생을 보내는 건 어떨까?'싶습니다. 아내가 간절히 원해도 내가 다시 도심의 아파트에 사는 건 가능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 아내는 서울로 보내고, 나는 다향이네 학교에 들어가서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아이들과 꿈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변산공동체가 처음 만들어질 때 합류하고 싶었지만 '농사는 지을 수 없다'는 아내의 반대로 무산되었으니 이제라도 도전해볼까 싶기도 합니다. 고민 끝에 육지로 돌아가기로 하고, 제주의 터전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좋아할 줄 알았던 아내가 '제주에 조금 더 살아 보겠다'면서 나만 먼저 올라가라고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아내의 결심을 확인하고, 잠시 떨어져 지내기로 했습니다. 저는 2월 14일, 다향이네학교 인근으로 이주해서 그곳 아이들과 지내려고 합니다. 변산반도에 오시면 연락주시고, 모두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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