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나의 복싱체육관은 정방폭포, 진시황의 불로초 전설 서복전시관 자리에 있었다. 아침 저녁 제자들과 더불어 그 폭포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몸과 마음을 달궜었다. 정방폭포의 정기를 오롯이 받은 것이니, 자그마치 정방혈통인 것이다. 당시 '서귀포 강 관장' 하면 악명(?)이 좀 높았었다. 다독이며, 때론 혹독하게 다그치며 정신건강의 무도(武道)를 집요하게 외쳤던 것이다. 직장생활이나 목장을 하면서도, 거르지 않고 나이 40까지 제자들과 링에 오르곤 하였다. 지금도 챔피언을 꿈꾸며 달리고 있는 그 제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나름대로의 길에서, 나름대로의 성취를 기원하는 것이다. 적어도 중도에서 타월을 던지는 일이야 결코 없으리라. "너희는, 정방혈통이니" 나의 체육관 출신 선수들로 이뤄진 '제주복싱회관 동우회'의 모임을 분기마다 가진다. 다 큰 제자들과 마주앉아 잔을 나누다 보면 '과연 내가 이 사람들을 가르쳤는가?' 하는 생각에, 문득 숙연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저마다 제 분야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제자들이 자랑스럽다. 무얼 더 말하랴만, 성호 긋고 링에 오를 때처럼 결연한 의지로 매사에 임할 때, 사는 게 더러 수월해지는 것이다. 이제도 들리는가? 링 바닥에 쓰러져 처절히 뒹굴 때, 쟁쟁 귀청 울리던 그 환호성, 본디 그 세상의 냉혹함을 알고 매사에 임할 때, 또한 사는 게 더러 수월해지는 것이다. 오랜만에 외돌개 해안길을 걸어본다. 지난해의 병원생활로 비교적 쉬운 코스인 새섬을 주로 다녔기 때문이다. 그새 좀 서먹한 길 곳곳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소나무들이 많이 베어져 있었다. 아름드리 그 소나무들이 재선충으로 인해 속절없이 죽어간 것이다. 간간이 재선충 방제주사를 놓았다는 표지는 보이지만, 그 약의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나무들도 병색이 완연하다. 이대로라면, 머잖아 이 해안의 소나무는 모두 죽어 없어지리라. 청청한 그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서 연륜의 경관을 빛내던 이 자리, 그들 없는 민둥해안을 상상하기란 차마 어렵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바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어쩌다 입으로나 그 울창했던 시절을 추억하게 되리라. 걷다 보니, 죽은 소나무 그루터기마다에 쓰여진 빨간 페인트 글씨들이 보인다. 죽은 순서의 일련번호 같은데, 망자에 대한 체면치레 같은데, 지금 시급한 것은 서둘러 대체 수종(樹種)을 심는 일이다. 고작 죽은 놈 불알이나 만지작거릴 때가 아니다. 이 서귀포의 절경을, 그냥 민둥해안으로 방치할 수야 없잖은가. 백년 후 천년 후에도 후회되지 않을 수종을 심사숙고 취사선택하여 베어진 자리는 물론 비실거리는 소나무 밑에도 다 심어서 훗날을 도모해야만 하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소나무들 주변에 자라나는 어린 소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점이다. 어찌하여 자식들을 키우지 않았을까? 살아봐야 뻔한 세상, 이 고생 이 걱정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웅변인가? 그래서 자식 안 낳기 결의대회라도 열었던 것일까? 급기야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채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번 재선충의 내습을 예견하고, 차제에 멸족의 화를 기꺼이 맞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 너른 땅에 눈망울 초롱초롱 한 어린 소나무가 단 한 그루도 없겠는가? 끈질긴, 살아보려고 악착같이 발버둥치는 나무를 심어야 하는 까닭이다. <강문신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