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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하루를 시작하며]아, 화산섬의 봄이여!
입력 : 2014. 04.03. 00:00:00
[하루를 시작하며] 4월이다.

싱그러운 봄바다에 유채향이 떠있다. 한라산 자락에 뒹구는 잔설(殘雪)과 구석구석 온기를 품어내는 섬 속의 대지들, 어느새 제주엔 봄이 또 왔다.

그러나 제주의 봄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게 첫아이가 태어나고 어머니의 불심이 머물렀던 그리운 시간, 그러나 육신을 노근하게 만드는 몽환적 햇살마저도 언제나 가슴시리던 4월이었다. 무의식 속에 빈번히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었던 서늘한 기류, 제주의 4월은 스멀스멀 무언가를 내뿜으며 나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화산섬의 봄은 잔인했다. 내가 제주에 안착한 30년 세월 내내 그랬었다. 낯설던 섬풍경이 눈에 익고 아낙네의 투박함이 정겹게 느껴질 무렵 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수놓았던 4·3의 아픔에 섬뜩함을 느꼈다. 마을마다 흐드러지게 핀 꽃무더기 속에 밀려오는 상춘객의 물결들, 그러나 해질 무렵이면 중산간 곳곳에 핏빛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숨죽이는 촌로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돌았다. 목전에 펼쳐지는 화려한 풍광속에 스산함과 울적함이 농축되어 혼재했던 제주의 4월, 나와는 무관했던 세월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생살을 파고드는 가시처럼 아리고 쓰렸다.

그 누구의 잘못이던가. 바다에 나가 물질하며 척박한 토양을 일구어 생계를 이어갔던 이들이었다. 상명하복을 천의(天意)로 여기며 공익적 삶을 살았던 이들이었다. 그들 모두에게 사상과 이념이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좌익과 우익이란 것 또한 얼만큼이나 중요한 삶 속의 가치였을까.

나는 4월이 오면 자유롭지 못했다. 공연히 주눅이 들었다. 영문도 모르고 스러져간 영령에 대한 죄스러움이랄까. 빈한한 역사의식에 대한 부끄럼 때문이었을까. 나는 언제부턴가 추모의 대열에 함께하고 있었고 어줍을지언정 소소한 고민의 흔적들을 글로 표출하고 있었다.

어김없이 또 4월이 찾아왔다. 그러나 올해는 몇 가지 이유로 인하여 희망을 갖는다. 오랜 기간을 꼭꼭 담아두었던 암울한 역사의 한 조각,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처참한 사건, 하지만 4·3유족회와 제주경우회는 평화정신의 상징적 사례를 남겼다. 진상규명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네 탓만을 부르짖었던 그동안의 정치적 논리를 배제하고 함께 충혼묘지와 4·3제단을 찾았다. 경직된 시각을 투척하고 유연하게 접근하고자 노력하는 그들이다. 냉전시대의 논쟁을 마감하고 스스로 평화를 수호하는 상생의 길을 열어가는 그들이다. 이야말로 인류가 간직해야 할 평화정신의 모태가 아니던가.

다행스럽게도 국가추념일 지정에 대한 바람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국민의 정부에서 제정한 특별법과 노무현 대통령이 도민에게 사과했던 진정성을 바탕으로 수많은 이들의 오랜 노력이 일궈낸 66년만의 결실이었다. 나는 이와 더불어 정부가 공인한 첫 4·3추념일에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을 소망한다. 이는 반세기 넘도록 섬밑둥을 맴돌던 선량한 희생자에 대한 국가원수로서의 기본적 관심이며 제주에 산다는 이유로 4·3에 자유롭지 않았던 도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허경자 서귀포문화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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