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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를시작하며] 화사한 벚꽃의 만개로 시작한 2014년 4월은 유난히 잔인한 달이었다. 즐거운 학창시절의 추억, 제2의 인생을 위한 귀농의 꿈과 더불어 제주를 향하던 많은 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슬픔을 넘어선 분노가 되었다. 매번 대형 참사 때마다 안전 불감증의 국가 수준을 원망하였지만 이번 사고 역시 인재임이 밝혀질수록 그 분노의 게이지는 높아만 간다. 언제까지 우리는 안전 불감증이란 중병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인가? 제주는 2007년 WHO가 선정한 '안전도시'이며 2010년에 재인증되는 명예를 얻었다. 그런데 자랑스러운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에서 전해지는 각종의 지표는 제주가 범죄, 교통사고, 각종의 재난사고로부터 안전한 도시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10만 명 당 범죄율은 전국 최고 수준이며, 무사증 입출국이 자유로운 국제자유도시라는 칭호 뒤에는 새로운 국제범죄의 가능성이 높아만 가고 있다. 또한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차량 등록대수는 2013년도 말 33만 대를 넘어섰고 안전도시에 걸맞지 않게 교통사고율은 급증하고 있다. 그리고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제주에 발생하는 이상기후는 매년 더욱 심해져 재난재해의 위험성이 높아만 가고 있다. 이러한 각종 위험요인이 급증할수록 그로부터 우리 인간을 보호해줄 유일한 환경인 건축과 도시에 주목하게 된다. 그런데 제주의 도시와 건축의 현 주소는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건축은 자본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자연환경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이 최대의 수익을 올리는 수단으로써 극한적인 수준까지 치닫고 있다. 이 순간 쉘터로써 건축 본연의 기능은 사라지고 안전은 뒷전이 된다. 더불어 이 시대의 건축가들은 그러한 욕망의 대리인으로서 한편으로는 공공의 윤리적 책무를 다해야 하는 공인으로서, 중도위에 서서 길을 잃고 헤매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있는 듯하다. 하지만 개발의 시대에 들어선 제주의 시대적 상황은 건축과 도시를 다루는 건축가들에게 안전 불감증의 치유라는 사회적 사명의식을 더욱 절실히 요구하는 시점이다. 최근 제주에도 50층 이상이거나 높이 200m 이상의 초고층 건축기준을 넘어선 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초고층 건축의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은 마련되지 않는듯하다. 대비방식은 설계단계에서 방재시스템의 효율적인 적용과 초고층 구난시스템의 구축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후자의 경우 서울시의 사례를 보면 400m 이상을 송수할 수 있는 펌프차량과 방수포를 장착한 헬리콥터 등을 도입하여 초고층의 재난 대비 인력을 구축하였다 한다. 제주의 경우 아직까지 15층을 넘어선 고층건축의 재난에 대비한 장비가 전무한 현실이다. 마땅한 설비나 장비의 준비가 없다면 건축 설계 단계에서 피난과 대피의 방식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가 요구된다. 예를 든다면 위급 시에 골든타임을 연장할 수 있는 피난 공간과 안전한 대피로를 설계과정 중에 디자인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가의 디자인과 건축주의 용단으로 재난을 대비한 초고층 건축 디자인의 전형이 제주에서 최초로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건축이 안전도시 제주의 아이콘이 될 수 있으리란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자본의 욕망은 그러한 최소한의 배려마저도 허용치 않고 있는 듯하다. 필자의 청소년 시절 대표적인 재난영화인 '타워링'이 떠오른다. 영화 말미에 건축가로 분한 폴 뉴만의 "현대인의 추한 위상과 오만을 길이 새기기 위해서도 이 빌딩의 잔해를 남겨둬야 할 것이다"라는 대사는 안전 불감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울림이 있다. 슬픔과 분노로 가득했던 4월의 끝자락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며 안전한 제주의 건축과 도시를 향한 건축가의 사회적 책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양건 가우건축 대표>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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