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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하루를 시작하며]"아버지 사랑해요"
입력 : 2014. 05.07. 00:00:00
[하루를 시작하며] 아버지!

소쩍새 우는 이 밤은 또다시 봄입니다. 아버지가 나고, 난 곳으로 돌아간 봄이에요.

어릴 때 아버지는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였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성장할수록 아버지는 힘 빠지고, 백발이 성성한 영감님이 되어 갔지요. 아버지의 그런 낯선 모습을 지켜보는 게 제게는 슬픔이었습니다. 지금 제 나이보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 그러니까 제가 초중학생 때였을 거예요. 그때는 자식들이랑 놀아주지도 않고, 어딜 데려가는 법도 없이 날마다 일만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답니다.

그래 입 밖에 낸 적은 없지만 때때로 당신의 흉을 보았지요. 왜 사내답지 못하고, 쩨쩨하게 사느냐고. 세월이 한참 흘러서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머리 굵어가는 자식 넷을 키우느라 아버지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하고 살았다는 걸 말입니다.

아버지 기억하세요? 나 좋다고 먼 제주 땅에 살면서 늘 죄송했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곁에서 지켜주기를 바랄 텐데 하는 생각에서 늘 자유롭지 못 했습니다. 그래 날마다 문안전화를 드리면서도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미친척하고 통화 말미에 "아버지 사랑해요" 했을 때 당신은 수화기 너머에서 움찔하셨지요. 한동안 말이 없던 아버지가 "술 마셨냐?" 했을 때 아버지도 웃고, 저도 껄껄 웃었지요. 아버지 그때가 그립습니다.

다향이의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입원 소식을 들었지요.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폐암 말기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습니다. 그때 마침 제 초등학교 시절의 얘기. 아버지의 젊은 날에 대한 얘기를 글로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자식들을 위해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일하신 아버지.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비웃었습니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게 죄가 아닌데도 그랬지요. 저는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 그 원고가 출간되면 서양 사람들의 그것처럼 책의 맨 앞에 '아버지 오재만, 어머니 변임순 앞에 이 책을 바친다'는 헌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아버지 앞에서 읽어드린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백내장과 무릎 인공 관절수술, 척추수술, 심장수술을 받으면서 급격하게 무너져갔습니다. 그런 와중에 셈 밝던 어머니의 정신이 흐려졌습니다. 때때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가 하면 엉뚱한 말씀을 하셨지요. 그때 노인들은 외롭지 않은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더라도 함께 웃고, 울며 맞장구치는 말벗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래 '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게 낫지 않을까?' 얘기했다가 동생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제사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동생들한테 "어떻게 하긴? 우리 집에서 모셔야지." 하니 동생들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명절 때는 비행기 표를 구하기도 힘들고, 값도 비싸니까 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시면 어떻겠냐고? 그래서 아버지의 기일은 맏이인 제가 제사를 지내고, 둘째는 추석에, 막내는 설에 아버지를 모시기로 했지요. 하지만 자식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제수씨들한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는 지금 요양병원에 계세요. 그리고 제 생각처럼 집에 계실 때보다 훨씬 건강해졌습니다. 그리고 내일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서 동생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온대요. 그래 오늘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를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모든 걸 잊고 내일 하루라도 어머니 아버지께 기쁜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늦은 밤, 소쩍새 울음을 들으며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오성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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