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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광장]돌하르방과 동자석
입력 : 2014. 05.13. 00:00:00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제주돌문화공원 1코스에는 제주를 대표하는 석상인 돌하르방과 동자석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관광객이 돌하르방과 동자석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돌하르방 앞에서는 기념사진도 찍고 만져보기도 하는데 동자석 앞은 그냥 지나가기 일쑤이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제주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돌하르방을 꼽는다. 이를 증명하듯이 돌하르방과 관련된 관광상품은 셀 수 없이 많다. 툭 튀어나온 큰 눈, 뭉툭한 주먹코, 넓게 뻗은 귀, 굳게 다문 입,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있는 돌하르방은 흥미로운 대상인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필자는 돌하르방보다는 동자석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김석익(金錫翼)의 '탐라기년'( 耽羅紀年)에 따르면 돌하르방은 1754년(영조 30) 목사 김몽규가 성문 밖에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제주현·정의현·대정현의 성문 앞에 세워져 성문의 수호신으로서 경계표지 및 금표(禁標·금지의 표식)의 기능을 했다. 반면에 동자석은 무덤 앞 좌우편에 마주보거나 나란히 세워져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묘 터를 지키는 지신 역할을 수행하는 33~69cm 크기의 아담한 석상으로 17~20세기에 많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크기만을 놓고 보면 돌하르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미적 요소도 좀처럼 찾기가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성문 앞에 세울 돌하르방을 만든 사람은 3현에서 내놓으라는 석공일 것이나 동자석은 만든 사람은 상대적으로 실력이 좋지 않은 동네 석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동자석의 예술적 가치는 크다고 생각한다. 동자석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간단한 직선과 곡선만으로 인물군상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머리도 민머리, 쪽진 머리, 땋은 머리, 상투 등 다양하게 표현하였고 손에 들고 있는 기물도 꽃, 술병, 부채 등 다양하다. 특히, 온화한 표정에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 표현은 과장되지 않은 제주인들의 미덕과 해학을 소박하게 풀어낸다.

또한 동자석이 가지고 있는 의미도 남다르다. 동자석은 제주인의 효 사상을 대변하는 문화적 아이콘이다. 농토도 넉넉하지 않은 현실에서 자신의 밭 한 가운데 조상의 묘를 쓰고 산담을 두르고 비석이나 상석, 동자석 등의 석물을 마련한다는 것은 조상 숭배가 여느 지역보다 강한 제주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주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동자석은 돌하르방이 1980년대 제주도에 한창 관광 붐이 일던 시기에 관광객들에게 각광받는 기념품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주목받지 못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같은 석상이지만 이렇게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은 동자석이 세워지는 위치 때문이기도 하고 동자석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우리 탓이다.

이제부터라도 사라져가는 소중한 문화유산인 동자석을 찾고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동자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일반 대중들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중국이 진시황릉이 부장품을 활용해 기념품을 만든 것처럼 동자석의 활용방안을 마련한다면 제주 돌문화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김재경 제주돌문화공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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