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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하루를 시작하며]'제주의 환경 문화'를 팝니다
입력 : 2014. 05.14. 00:00:00
"모든 살아있는 개체는 생존 그 자체와 종의 보존을 위해 다른 개체에 의존해야 한다. 의도 또는 비의도적으로 도입된 외래종은 섬의 경우 토착종을 도태시켜 절멸에 이르게 한다. 섬 종들은 진화적으로 포식자가 없는 상태에서 순하고 날지 못하여 번식률이 낮다. 또한 인간에게 포획이 쉽고 외래종에 방어 수단이 없어 쉽게 정복당한다."(『식물학』노트)

'다문화시대에 제주인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필자의 질문에 어떤 이는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제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가꿀 줄 아는 사람이라고 개인적인 정의를 내세웠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은 환경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속한 환경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주인'은 제주환경문화의 일부분으로 작용하고, 작용 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제주인도 포함된 세계자연환경문화유산의 명색을 열심히 팔아대고 있는 '제주올레'에는 언제부터인지 외래종식물군이 선명하게 거리를 누비며 지켜 서 있다. 아무리 봐도 값이 싼 名이요, 천박한 色의 연출이다. 덕택에 사람들은'얼빠진'대도시 기성문화의 배경 속으로 추락하는 것을 맛보고 있는 중이다.

예로부터 외부 어떤 종의 식물이 뿌리를 내려 번식하게 되면 그 식물 원산지 사람들이 따라 들어와 살게 된다고 한다. 환경인연이란 사회적인 언어이기 전에 자연의 흐름이면서, 더 크게는 인류의 생존 문제가 거론될 만큼 무서운 관계라 볼 수 있다. 그것 자체가 생태계의 순환고리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제주의 넓은 들판마다 천연자원인 바람을 이용한다는 풍력 발전소도 미관상으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아 악마의 세 손가락 같은 날카로운 송곳침이 예초기처럼 돌아가면서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그 밑에 서면 독사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먹이를 찾을 때 '쉬익 쉬익'거리는 그 소리까지 들린다. 가까이 가면 바로 감전될 듯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탑이 산줄기 따라 쭉쭉 뻗으며 버텨 서 있고, 거기다 기지국 안테나까지 끼어들어 한 몫을 더 한다. 이것이'지금 여기'제주환경문화의 현 주소다.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 체로키족이 총칼로 무장한 외국군들에게 땅을 내어주고 자신들은 산속으로 밀려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서서히 말라죽어가는 것을 생각나게 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마을 사람들과 여러 환경단체에서 제주도 정부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항상 그렇듯이 자본의 문제로 발뺌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그림'이 되는 곳곳마다 골프장과 고급 숙박시설이 '곶자왈'을 무너뜨리고, 그도 저도 아닌 변두리 촌구석에는 전자발찌를 찬 외지의 사내들까지 은근슬쩍 숨어들어 순박한 마을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 독종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들도 제주인으로 제주환경문화의 한 부분이며 생태계에 한 역할 톡톡히 한다. 민주정치의 원조인 고대 아테네의 시민권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가하거나 기부금을 냈을 때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 위상에 해를 끼쳤을 때는 국외추방까지 서슴지 않았다. 바로 그, 제주의 올레문화가 벤치마킹한 마라톤의 나라다. 반세기에 걸친 페르시아와의 마라톤 전쟁은 그들만의 문화의 힘으로 강력한 무력을 간단히 이긴 것을 상징한다. 그들의 문화는 한때 세계를 지배할 만큼 충분히 강했던 페르시아를 이겼고, 로마의 정신을 포위했다. 그래서 그들의 자연환경은 신화가 되어 세계적인 종교문화의 발판이 되었고, 그들의 발자국은 수 천 년 동안 여전히 존재하는, 시간이 갈수록 더 찬란히 빛나는 이유가 되었다.

三多(돌, 여자, 바람), 三無(거지, 도둑, 대문). 三寶(바다자원, 산림자원, 독특한 민속)의 환경문화와, 그들보다 더 많은 신화가 살아 숨 쉬는 정신문화의 고장, 제주도가 '확실하게' 제대로 짚고 배워 나가야 할 부분일 것이다. <고춘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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