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나에게는 건축가 친구가 있다. 어찌나 바쁜지 툭하면 지방으로 외국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축지법을 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얼마 전 주말, 나들이 길에 짬을 내 그의 사무실에 잠깐 들렀었다. 서울 한복판 오밀조밀한 빌딩 숲 속 그의 사무실은 주인의 잔손질이 돋보이는 아담한 공간이었다. 여느 사무실처럼 평범하기도 했는데, 유독 내 눈길을 끌었던 물건은 시계 두 개. 바쁜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다 점점 무료해지던 즈음 내 눈은 호기심으로 다시 반짝였다. 하나는 방사형 놋쇠 새장 속에 새 한 마리가 모이를 쪼고 있는 모양의 시계였다. 가운데 우뚝 솟은 기둥 끝, 엎어놓은 팽이모양의 가로등 측면에 간단한 눈금과 숫자가 있고 새 한 마리가 고정된 자리에서 "촉촉 촉촉" 좌우로 움직이면서 똑딱 소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촉촉 촉촉"…단조로운 새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문득 주변의 모든 소리는 묻히고 지쳐 있던 오후의 피로와 나른함이 날아가는 듯했다. 청량하게 찾아온 마음의 평온함. 바쁜 숨 돌린 친구에게 시계 얘기를 했더니 활짝 환해진다. 그 새를 들여다보노라면 다 잊고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온다고. 마음에 담아 두고 온 한 장의 그림, 신기하게도 그 새를 떠올리면 즐거워진다. 우리는 모두 참 바쁘다. 아침 눈을 뜨고 밤 깊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지난 날 나는 "ㅇ시 땡! 하면…"을 입에 달고 살았다. 시선 닿는 곳에 시계가 없으면 불안했다. 하루를 잔 조각으로 쪼개면서 살아야 했던 나로서는 아이들과의 식사 시간도 "ㅇ시 땡! 하면 밥 먹자"라고 약속하곤 했다. 계획을 세우느라, 서로의 시간을 맞추자는 말이었는데 그렇게 매번 머릿속에서 시간표를 짜고 있어야 순간순간을 놓치거나 엉클어짐 없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바쁘게 사는 것이 더 아름답던 시기였다. 버릇처럼 지금도 늘 시간이 궁금하다. 때때로 잰 걸음 대신 산책하는 느긋한 발걸음은 어떤가, 고인듯 모이 쪼는 새를 들여다보는 건 어떤가 생각해본다.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잠든 몇몇을 빼고는 거의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 아이들도 늦게까지 나와 수다를 떨다가, 불 꺼진 침대 머리맡에서 스마트폰을 하다가 잠들고 다시 만지작거리면서 깨어났다. 참 많은 일들을 손바닥 위에서 하고 있다. 바쁘다. 놓여나기가 쉽지 않다. 생뚱맞지만, "혹시 거기, 모이 먹는 작은 새도 있니?"라고 물어보고 싶다. 또 다른 시계는 나무 덩굴모양의 받침 위에 투명한 큰 구슬이 얹어져 있었다. 중앙에 부속들이 고스란히 보이고 둘레에 로마자 숫자가 쓰인 고풍스러운 시계였는데 바늘이 멈춰 서 있었다. 고장 나 못쓰게 되었지만,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거기에 담긴 이야기 때문이리라. 우리 집에도 고장 난 시계가 있다. 펼친 책 모양인데 한쪽 액자에 유치원생이던 큰 딸 사진이 17년째 박혀있다. 멈춰진 과거가 가끔 현재로 새처럼 날아와 행복하게 한다. 지난 봄, 나에게는 잊지 못할 하루가 생겼다. 4월16일. 점점 희미해지겠지만 잊고 싶지는 않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오래 질척댄다고 나무란다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자꾸 묻게 된다. 어떤 날로 기억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눈물짓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슬픔은 그 눈물기둥 크기만큼의 에너지가 되어 우리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멈춰 선 시계를 기억하고 싶은 시간으로 맞춰 놓자. 잘 보이는 데 놓아두면, 어쩌면 그 시간의 시계 바늘은 우리가 소망하는 가야 할 방향을 가리켜 줄지도 모르겠다. <김문정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