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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하루를 시작하며]고백
입력 : 2014. 06.19. 00:00:00
글을 써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명문을 남겨야겠다는 욕심도 아니었다. 답답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철없던 시절 매일같이 반복되었던 육아와 가사 속에 내가 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도피처였다. 나는 하찮은 끄적거림을 통하여 맘속에 뭉쳐져 있는 옹이, 섬으로부터 누적된 삶의 편린들을 꺼내버렸고 후에 그것은 내 글쓰기의 원천이 되었다.

산고를 치르듯 책을 냈다. 어쭙잖은 글 욕심이 불러낸 결과이다. 하지만 욕심만으로 글을 써온 것은 아니다. 스물다섯의 나이를 구속했던 녹록지 않은 결혼의 현실, 섬이라는 한계에서 시작한 객지에서의 고독한 자기단련, 자질구레한 일상들은 나를 불면 속으로 떠밀었고 밤세워 찾아낸 하나의 단어, 한 줄의 문장으로 나는 위안을 얻었다. 늦게까지 자판을 두드리며 신경전을 벌였던 자신과의 싸움, 그러나 그 고민에 힘입어 나는 쉼없이 자라나는 욕심의 뿌리를 스스로 발원할 수 있었고 자기연민에 흐느적거리던 서른 살의 나를 섬 밑둥에 단단히 옭아맬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또 다시 갑갑증에 시달리고 있다. 일상의 뒤편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사회적 역할, 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솔직히 그동안은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착실히 살아내면 모든 게 순조로울 것이라 여겼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불현듯, 정말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나만이라도 잘해야 되는 것인지에 대한 혼란으로 그동안 굳건히 살아온 방식에 대해 회의감마저 드는 것이다.

본 적도 없고 상관도 없던 낯선 사람들, 불특정한 몇몇의 과실로 인하여, 어쩌면 고의적 태만일지 모르지만 수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언제든지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던 정부와 관료의 대응은 참담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사람이 갇힌 채 가라앉는 배를 생중계로 보는 나라, 온 국민이 허탈했고 모두가 죄인이 되어 미안한 마음으로 육십일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도 개운치 않은 현실이다. 이것이 진정 그들만의 잘못일까. 물질에 대한 맹종, 권력에 대한 복종, 그리고 고착화된 이기심이 낳은 부작용은 아니었을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무형의 가치들, 사회를 건강하게 이끄는 각자의 역할들, 이보다는 현란한 말과 겉치레에 길들여진 우리 모두의 자화상은 아니었을까.

동네 문인일지언정 명색이 글쟁이인 나는 현안에 얼마나 고민했던가. 어떤 자세로 행동하며 동참했던가. 목전의 사익과 공익 중 선택한 것은 무엇이던가. 내게 돌아올 불이익이 두려워 다급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묵과하지는 않았던가. 나 역시 먹고 사는게 바쁘단 핑계로 이러한 물음의 먼거리에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일, 가족, 육아,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들만으로도 지치고 힘들었다. 그렇다고 배움이 많은 지식인들, 가진 게 많은 부유층인사에게 내 몫을 미룰 수 있는 것이던가. 그저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사회적 역할, 공익적 책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특권은 아니질 않던가.

세상이 보여준 진실에 나는 반성한다. 양심껏 고민하고 행동하지 못함에 부끄럽다. 늘어난 나이만큼, 살면서 얻어낸 지위만큼 사회적 무게도 감내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어느덧 유월은 다 지나고 아직도 리본은 노랗다. 명치끝이 아리다. <허경자 서귀포문화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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