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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그날, 오등동 설세밋당의 파괴
입력 : 2014. 06.23. 00:00:00
2개월 전에 제주시 오등동 마을의 미 지정 문화재 '설세밋당'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시청의 관계자와 함께 '문화재 파괴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신목을 밑둥부터 베어버린 현장은 정말 염치없고 양심 없는 죽임의 시나리오를 짐작케 하였다. 문화재 파괴 현장을 방문하기 전날에 이런 일도 있었다. 제주에 살지만 영원히 제주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유배인이거나 이주민으로 살고 있는 한 친구가 "오등동 설세밋당은 무신 거 허는 디라?"하였고, 그와는 달리 늘 제주 토박이, 원주민임을 주장하던 나는 그에게 "설세밋당은 오등동 '설세미' 본향이잖아?"하였다. 그리고 '설세밋당' 이야기는 나와 나의 친구 사이에도 제주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정말 속상하고 피곤한 일이었다.

제주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곳을 '인연을 가진 땅', 고향(故鄕)이라 하지 않고, '뿌리를 내린 땅', 본향(本鄕)이라 한다. 왜 본향이냐면 탯줄을 태워 묻어 둔 땅, 태 사른 땅(태산땅)이란 것이다. 예로부터 제주의 어머니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 어머니와 아이의 인연의 줄, 새끼줄을 잘라 태운 아기의 태(胎)를 태운 검정을 항아리에 담아서, 새벽에 탯줄처럼 세 줄로 감겨 있는 길, 세 길이 만나는 삼도전거리(세거리) 비밀한 곳에 묻어두었다가, 아이가 피부병에 걸리면 태를 태웠던 검정을 아픈 부위에 발라주었다.

제주에 본향당은 땅과 나, 어머니와 아이를 이어주는 새끼줄, 대지의 탯줄이며, 거룩한 성소(聖所)인 것이다. '설세밋당'은 오등동의 성소, 오등동 본향당이다. 이전에 내가 신당조사보고서를 쓸 때만 해도 그윽하고 영적인 에너지가 전해오는 신비로운 성지였다. 그런데 오늘 보니, 처참하게 파괴된 쓰레기통이 되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인재였다. 복받치는 슬픔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지명으로서의 '설세미'는 근처에 예로부터 '당오백 절오백' 중 하나인 절이 있었고, 절이 있었던 자리에 샘이 있어 '절샘(절세미)'라 했는데, 시간이 지나 '설세미'가 되었으니, 옛날 절이 있었던 곳에 당이 또 있어 '절세밋당(절샘에 있는 당)'이 '설세밋당'으로 변해 지금의 오등동에 있는 본향당의 하나가 된 것이다.

그때 그 처참했던 심정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시청 문화재 과에 근무하는 김나영 연구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등동 소재 "설세밋당 신목이 밑둥부터 잘리고, 당의 제단 블록은 허물어져 당의 원형은 심각하게 파손되었다"는 전화였다. 나는 김나영 연구사 일행과 전문가 자격으로 함께 현장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나의 영혼은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제주도는 할 말 없으면 언제나 당오백 절오백이 있었던 탐라국이었다 자랑해 왔다. 그런데 지금도 당오백 중 400여 곳의 신당유적이 남아있으며, 그 400여 곳이 신당이 그래도 가장 제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신앙유적이 아닌가? 그런데도 지금 현재, 송당 금백주당, 와흘 한거리하로산당 등 5개의 당만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나머지 395개는 미 지정이니, 관리 대상이 아니라 하였다. 내가 생각할 때 신당문화재는 단 하나도 소홀하게 다루어져선 안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오등동 '설세밋당'의 파괴는 관덕정 한 채를 생각 없이 태워버린 것처럼 서운했다. 에루살렘 성지를 불태운 것과 같은 것이다. 본향당의 신목(神木), 당 나무를 등걸부터 찍어낸 몰염치한 행위는 분명 종교적 편견이 저지른 것 같다는 느낌도 있었다.

제주사랑의 문화정책이 근본적으로 수정되어 몇 안되는 우리의 잔존 잠정 문화재들이 피눈물을 쏟는 현실, 지정이든 미지정이든 파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무병 민속학자·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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