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n라이프
지휘자를 지휘하는 그림자 권력
노먼 레브레히트의 '거장 신화'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4. 07.11. 00:00:00
자신의 이름만으로 연주회 티켓을 매진시키거나 음반이 팔리게 하는 지휘자는 얼마나 될까. 1950~60년대까지 판매된 음반의 4분의 1은 클래식 음악이었다. 하지만 90년 후반 미국 음반 판매에서 클래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3~4%로 크게 떨어졌다. 이런 상황은 세계적으로도 별반 다르지 않다. 클래식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고 그 희망적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어째서 재능있는 음악가는 점점 희귀해지고 지휘봉 뒤에 숨은 사기꾼들이 판치고 있는가.

영국의 음악 평론가이자 소설가인 노먼 레브레히트는 '거장의 신화'에서 그 이유를 지휘자 권력의 극대화에서 찾고 있다. 여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TV와 인터넷 등 음악 외적인 요소도 클래식 음악의 약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는 지휘자 권력을 중심으로 음악계 내부의 근본적 원인을 집요하게 탐색해나간다.

클래식 음악을 통해 권력의 탄생과 부패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거장의 신화'는 120년에 걸친 클래식 음악계의 별들, 즉 지휘자들의 역사를 방대와 조사와 연구로 풀어놓았다. 지휘자의 원형적인 모습을 탄생시킨 아르투르 니키슈와 한스 리히터, 교향곡의 시대를 열고 오늘날 지휘계의 관습을 창조한 구스타프 말러, 독재자 마에스트로의 이미지를 구축한 토스카니니, 파시스트 권력에 굴복한 카를 뵘과 푸르트벵글러, 음악과 자본을 결합해 기업 제국을 건설한 카라얀 등이 등장한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세계 음악계를 지휘하고 있는 인물도 소개됐다. 음악가 수 백명과 지휘자 100여명의 에이전트 CAMI의 회장 로널드 윌포드다. 지휘자들을 지휘하는 로널드 윌포드는 지휘자들을 왕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자 재산을 일궈주고 이들의 가장 개인적인 비밀이나 죄를 감춰주는 수호자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날아다니는 서커스단으로 바꾸었고 한 무리의 지휘자들을 자신이 생각한 모습으로 복제해냈다.

지은이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에이전트의 출현이 지휘 산업의 위기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측면이라고 말한다. 유명 지휘자를 독식하고 연주자들의 계약과 활동을 관리하는 동안 음악가들 사이에 불평등이 심화됐고 연주의 질이 표준화되고 천박해졌다고 본다.

음악 평론가 김재용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책 말미엔 레브레히트가 던진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홍난파에서 성시연에 이르는 한국 지휘자의 역사를 부록으로 실었다. 펜타그램. 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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