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수도권을 벗어나 10년 가까이 지방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볼일을 보러 서울에 갈 때면 참 요지경 속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동을 하려고 지하철을 타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봅니다. 누구는 카카오톡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영화나 TV드라마에 집중하는가 하면 음악을 듣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에 시선 고정입니다. 그런 광경을 목격할 때마다 '저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해 봅니다. 큰 규모에 비해서 깔끔하게 정리정돈 된 일산호수공원.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자전거도로와 달리기 길로만 뛰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누군가에 의해서 길들여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성냥갑이나 닭장으로 비유되는 아파트가 연상됩니다.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공간이 되면서-마당이 사라지면서-장례식장, (김치)냉장고와 에어컨, 가습기와 제습기, 공기청정기 등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의 공급자는 또 누구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이 불볕더위와 빗속에서 농성을 합니다.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도보순례도 합니다. 당연히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진상규명을 해야 할 책임자들은 나 몰라라 합니다. '이게 나라냐?'고 절규하며 어른으로서의 죄책감을 가졌던 시민들. 차라리 이민을 가고 싶다던 분들이 광장에서 집회를 합니다. 더 많은 분들은 불의에 맞서 싸우는 대신 뒤에서 욕이나 하고, 시시콜콜한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로 관심을 돌리는 것 같습니다. 예전과 달리 군대가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군복무 중인 청년들은 여전히 자살을 하고, 총기를 난사하는가 하면 구타로 목숨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군 당국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대신에 진실을 은폐하고, 축소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데만 급급합니다. 전시도 아닌데 왜 매번 엇비슷한 문제로 젊은이들이 희생돼야 합니까? 이래서야 어디 마음 편히 자식들을 군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커피체인점의 커피 맛은 그저 그렇지만 때때로 지인들과의 약속장소로 이용하게 됩니다. 테이크아웃이 아닌데도 종이컵에 플라스틱 뚜껑을 씌우고, 플라스틱 빨대와 함께 건넵니다. 처음 그 상황에 처했을 때는 몹시 당황했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커피를 컵에 마시고 싶다면 "머그컵에 주세요"하고, 따로 주문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것이 컵을 닦는 인건비에 비해서 비용이 싸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들었지요. 그렇게 발생하는 쓰레기의 환경오염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면서도 여전히 자동차를 타고,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한 친구가 조금 늦는다면서 만나기로 한 강북 노원역 인근의 패스트푸드점.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사오십 대까지 북적입니다. 테이블이 비기가 무섭게 줄지어 선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패스트푸드점은 아이들만 가는 곳으로 알았던 터라 참 낯설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탈무드와 키부츠로 유명한 이스라엘. 유태민족이 남의 나라(팔레스타인)를 불법점령한 채 저희 조상들이 살던 나라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툭하면 가자지구를 공격해서 대량 살상과 파괴를 일삼습니다. 그들은 유엔의 결의나 권고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평화를 권고하면서도 이스라엘의 편만 듭니다. 그것은 유럽의 여러 국가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러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오성근 작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