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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대필은 역사 왜곡이다
입력 : 2014. 08.11. 00:00:00
최근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기명 칼럼 대필 문제에 대해 해명한 발표의 내용은 글쓰기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비참하고 끔찍한 말이었다. 지식인으로서 교육자로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변명이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글쓰기 훈련을 위해 쓰게 했다는 말이나, 또 그 글을 자신의 이름으로 공공 매체에 발표했다는 사실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후 대필의 문제에 대해 분노하면서 성토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분노하거나 개탄스러워 하던 사람들에 의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마저도 마치 당연한 것처럼 대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모순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문득 내가 읽거나 알고 있는 역사적 기록들조차 그 정체성에 대해 의문이 들게 된다.

전한 시대에 궁형을 당했으면서도 십 년이 넘도록 집필하여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은 그 다음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것은 사명감이거나 역사의식의 발로였다. 흉노에 군사 오천을 거느리고 투항했던 '이릉'을 변호했던 사마천은 군사들을 살리려고 고심 끝에 투항할 수밖에 없었던 진실을 보려고 했다. 그 속에 역사가 살아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무제의 미움으로 치욕스러운 형벌을 당하고도 끝내 붓을 꺾지 않고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의 자세는 단지 사관으로서만이 아니라 삶의 자세로 귀감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상황은 좀 다르지만, 기록과 관련된 일이 있었다. 연산군 때에 춘추관 기사관(記事官)이던 김일손이 기록으로 남긴 사초가 빌미가 되어 사림파 선비들이 목숨을 잃은 무오사화이다. 사관은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서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쓰지 않는다. 왜냐 하면 기록하는 모든 내용들은 훗날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찾아서 읽어보고 음미해보고 싶은 역사적 기록은 바로 이러한 의식에서 기록된 역사라고 해도 좋겠다.

오늘날 공보의 직책은 지난날 사관의 임무와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한다. 왜냐 하면 공보의 직책으로 남기는 모든 자료는 훗날 정사의 사초가 되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회, 도청 및 도의회의 공보 담당은 정사의 기록자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공보 담당은 권력자의 입과 손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남겨지는 기록들이 역사로 고착화가 되면 어찌 되는가. 제주 정치의 발전사를 후학들이 연구하기 위해 기록으로 보관되어 있는 도정, 의정 자료를 뒤적일 경우 그 자료들이 대필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대화록이 사라졌다고 해서 여야 의원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사초의 실종이라고 탄식했었다. 만약 20여 년간 의회의 자료들이 거의 대필에 의해 남겨진 것이라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이것은 사초 실종의 문제와 차원이 다른 역사를 왜곡한 범죄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조례 한 문구를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공보는 도민 일반에게 사실을 널리 알리는 보고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지사, 의원과 의장의 축사며 연설문을 대필하는 직책이 아니다.

공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 사마천의 자세며 김일손의 역사의식까지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지사 및 의원과 의장에게 케네디와 오바마의 연설문과 같은 명문을 원하는 도민은 한 사람도 없다. 다만 역사에 남을 자신의 발자취라고 생각하며 한 줄의 기록도 스스로 심혈을 기울여 그 진정성을 남겨야 한다. 그리고 공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사초 한 글자를 남긴다는 심정으로 역사적 현장이 될 사실을 도민들에게 알려주는 게 진정한 소임이다. <좌지수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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