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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국민들에게 8월은 극일(克日)의 달로 인식되고 있다. 일제강점에서 해방된 날, 광복절이 끼인 달이기 때문일 것이다. 광복절을 전후하여 각 매스컴에서는 독립투사들에 대한 특집들을 다루곤 한다. 의미 없는 일은 아니겠으나 왠지 일회성 이벤트는 아닌가 생각되어 씁쓸할 때가 많다. 몇 년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편지글 하나를 읽게 되었다. 한 어머니가 아들에게 쓴 편지글이었다. 그 글을 읽고 필자는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럽다! 부끄럽다!' 이 말만을 내뱉고 있었다. 필자가 부끄럽다고 느낀 것은 아마도 그 편지의 주인공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에 대한 죄송스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조마리아. 마리아는 여사의 천주교 세례명이고 원래 이름은 조성녀라고 한다. 필자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 그 편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다는 욕심에 전문을 게재한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좋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여사는 사형수인 아들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당당히 죽으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 아들이 누구인지 독자들은 이미 눈치를 채었을 것이다. 큰일을 하고 감옥에 갇힌 아들에게 결코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 말하는 어머니. 추상 같은 위엄이 서려 있다. 그리고 아들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애정이 녹아 있다. 아들의 수의를 짓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1910년 3월 26일 서른 한 살의 청년이 이국땅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항소도 하지 않았고 변호사도 요청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전쟁포로로 대우해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하였다. 대한제국의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활동을 하였고 그 연장선에서 적의 수괴를 처단한 것이라 주장하였다. 아름다운 청년 안중근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좁은 땅이나마 지켜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상한 각오와 희생이 따랐던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독립투사 후손들의 삶이 여느 사람들 같지 않다고 한다. 그들의 후손에게 적어도 우리 국민 평균적 삶의 수준은 보장해 주어야 도리가 아닐까 싶다. 요즘 뉴스를 보다 보면 분통이 터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편가르기를 한 채 사생결단식으로 싸운다. 대의를 망각하고 작은 이익에 집착하여 나라의 발전을 발목잡고 있는 것을 본다. 백년 전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싶어 가슴이 답답하다. 세계의 흐름을 살펴보기 바란다. G2로 성장한 중국은 이웃 나라들을 공공연히 힘으로 누르고 있지 않은가. 이에 맞서 일본은 과거 대동아공영의 허황된 꿈을 부활시키려 광분하고 있지 않은가.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가 아닐까. 의연하게 아들을 보내는 조마리아 여사를 다시 생각한다. 부끄럽고 부끄럽다. <권재효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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