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n라이프
일상의 비정상 만든 질병의 명명
최은주의 '질병, 영원한 추상성'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4. 10.10. 00:00:00
건강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질병의 기준도 바뀌어왔다. 난시와 근시의 결점이 농경사회나 목축사회에서는 정상일지라도 조종사에게는 비정상이다. 같은 증상이라도 시대의 필요에 따라 질병으로 분류되거나 안된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먼 옛날엔 질병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아픔, 쓰림, 불편함 등의 증상들만 있었다. 인간이 증상을 분류하고 여러 증상을 묶어 하나의 병으로 명명함으로써 비로소 질병이 탄생했다. 페스트, 사회불안장애, 류머티즘, 알츠하이머, 동맥경화처럼 말이다.

몸문화연구소 최은주 연구원이 쓴 '질병, 영원한 추상성'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에서 우리나라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15편의 문학작품을 들어 인간이 질병에 부여한 역사를 좇고 있다. 병증과 고통이 역사와 문학, 삶 전반에 걸쳐 어떻게 다양하게 인지되어 왔는지, 사회와 일상에서 어떻게 이용되어 왔는지 보여준다.

소포클레스의 서사시 '오이디푸스 왕'에 등장하는 질병은 윤리적인 과오에 대한 징벌이었다. '댈러웨이 부인'의 셉티머스는 신경쇠약으로 인해 낙오자로 분류돼 요양원행을 지시받는다. '페스트'와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개인의 문제로 국한할 수 없는 전염병에 이르면 질병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모두의 삶이 된다. 병의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삶이 파괴되는 양상 자체가 질병이며, 병증을 통해 인간의 치부가 여실히 드러난다.

질병의 명명은 일상을 의학기술의 기준에 맞춰 비정상으로 만든다.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더 악화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빠지게 된다. 이같은 공포는 대중매체에 의해 확산되고 보험, 영양제, 헬스클럽, 건강식품 같은 자본주의의 굴레를 키워나간다고 했다. 은행나무.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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