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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건강보고서 메디컬센터
[생로병사]공감, 치료적 관계의 기본
입력 : 2014. 10.17. 00:00:00
어려서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 J가 정신과 병동에 입원하였다. 우울증으로 직장을 휴직하고 최근 자살 사고가 심해지면서 입원 당시 처방 받은 약을 한꺼번에 복용했다고 했다.

서로의 삶이 바빴던지 오랜 기간 연락 없이 지냈고 다른 친구로부터 J가 결혼도 하고 대기업에 취직해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적은 있었다. 정신과 의사로서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수없이 만났으니 그리 낯선 일이 아닐 터인데,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에 서로 마음이 잘 맞아 좋아했던 J를 진료의사와 환자로 마주하게 되니 그 상황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J의 치료는 동료 의사에게 전적으로 맡겼고, 우울증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J는 퇴원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직장 문제, 가족 간의 갈등 등으로 힘들어하며 수시로 나에게 전화를 하여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며 절망감을 호소하였고, J를 대하면서 치료자로서 다가갈 수 없는 조건에서 나 스스로도 걱정과 미안함 등 복잡한 감정이 들어 무척 힘들었다. J를 치료하는 동료 의사의 조언에 따라 보통의 정신과 의사와 환자 관계에서 하는 설명과 상담보다는, 절친한 친구의 관계로서 그의 입장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잘 훈련된 정신과적 면담기술보다는 진심을 보여주고 위로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타인의 입장이 되어서 그의 경험, 사고, 감정, 신념 등을 느끼고 이해하는 공감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후에도 여러 번의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J는 정신과 치료를 유지하며 잘 견뎠고 얼마 전 작은 수공품 가게를 열게 되었다며 기쁜 소식을 전해오기도 하였다.

인간중심치료의 창시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치료자의 무조건적인 긍정적 관심과 진실성 특히 공감을 표현하는 것 자체 만으로도 강력한 치유적 힘을 가진다고 하였다. J와의 일들을 겪으며 정신과 의사로서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초심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여러 가지를 반성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더욱 분명하게 깨닫는 것은 별의별 일을 겪는 인생의 굴곡 속에서 고통 받는 그들을 돕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향한 진심 어린 마음과 존중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표현하는 감정을 이해하고 그들을 존엄한 한 사람으로서 수용하고 공감하는 자세, 즉 내게 필요한 것은 사람이 가장 중요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정영은 제주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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