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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레'는 길의 옛 명칭 '질'에다 처소부사격 조사 '에'가 붙어 만들어진 17세기 이후 19세기까지 혼철표기된 국어의 옛 흔적이 남은 제주어로 집으로 들어가는 '올레'와 통하는 '길'의 개념이다. '질레'길은 제주사람의 역사다. 길은 수많은 '나'의 인생 여정이며, 수많은 '나'가 앞으로 걸어갈 미래다. 수많은 '나'는 길을 걸으며 생각하고, 또 다른 '나'를 만나 큰 하나가 되어 더 큰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 간다. 그렇게 '비단길(Silk Road)'은 육상, 또는 해상을 통한 근대 이전의 동서 교역로를 가리키는 말로 언어의 기원 자체가 중국의 비단이 로마제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비단길은 역사를 통해서 더 다양한 교역품들을 전달하는 통로로 확대되었고, 더 나아가 문화가 유통되는 통로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주도의 길들은 '도로명주소' 개편으로 이미 그 본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제주시 '일도일동'은 옛 탐라국 시조인 삼을나가 활을 쏘아 지역을 삼등분하여 다스린 구역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발전했고, '중앙로'는 조선시대 행정관청 목관아지(관덕정) 앞 십자로인 '한질(큰 길)'이 커진 이름이다. '칠성로'는 탐라국왕 15세 '후'가 북두칠성 모양을 보아 정사를 펼치려고 만든 제단 '칠성대' 일곱이 있었다는 길인데 중앙로의 범위 확대에 따라 '별이 흐르는 길의 역사'는 '표지'만 남아 지나는 발길에 채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름도 찬란한 광령(光靈)이었던 광령리는 '광성로(광령리와 고성리를 잇는 구간)'로, '하늘과 연결된 통로'라는 유래를 가진 조천리와 '땅의 지세가 완만하게 누워있는 것 같다'는 와흘리가 '조와로'로 약자통칭되었고, 무릉도원을 뜻하는 무릉리와 도원리는 영락리와 함께 '무영로'로 뒤바뀌었다. 시간이 흐르면 이 유서 깊던 마을 이름은 다 사라지고 무영로(無影路)란 이름처럼 '역사의 그림자조차 지워진 허깨비 도로'가 될 우려까지 떠안고 있다. 심지어 그 유명한 화가 이중섭이 지냈던 곳 '이중섭로' 곁에는 '유토피아로'라는 도로명패가 하나 더 붙어 있다. 제주인의 이상향 '이어도로'가 아닌 것이 가방끈이 짧은 제주노인네 눈으로는 영국국적으로 '창씨개명'한 듯 보이는 이름이다. 이러다가 머잖아 '바코드'가 도로명을 대신할 것 같은 예감에 필자의 머릿속은 온통 '미로'를 헤메다닌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도로명은 각 마을사람 30인 이상이 협의하여 승낙된 명칭을 '도로명주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된 것"이라 발뺌하고, 마을관계자들은 "도에서 도로명에 대해 마을에 협의를 지시한 사항은 없었다"며 마을주민들의 의견 수렴 없이 일괄 행정처리된 사항이라고 발끈한다. 게다가 도가 선출한 19명의 '도로명주소위원' 명단 중에 제대로 자격을 갖춘 제주역사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같은 상황은 도민을 우습게 여기는 '병폐 행정'의 일면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역사를 살펴보건대, 사람이 사는 마을의 거리에 별의 이름을 따다 주는 목민관이 있는가 하면 세금을 걷기 위해 머릿수를 쉽게 세기 위한 행정구역으로써 이름한 일제식민지 하수인이 있었다. 그리고 상업적 물질적 자본주의의 산물인 상품의 분류기호와 숫자를 새겨 넣는 현 행정관이 있다. 지난날 동양 최대의 철기산업문명을 일으킨 송나라 태조는 연호 이름을 세 번 씩이나 바꾸면서까지 국가의 번영을 꾀해 끝내 일어섰다지 않았는가. '길'이 태어나 뼈대를 이루고 성장하여 그 존재의 꽃을 피우기까지는 오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문화재 복원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지금 '역사가 살아있는 도로명'으로 전환하는 길이 '올레길 걷기'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관광특구 제주도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우선책으로서의 '길'일 것이다. <고춘옥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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