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n라이프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독일 철학자 페터 비에리의 '삶의 격'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4. 10.24. 00:00:00
인간의 가장 큰 정신적 자산
존엄성은 절대적 속성 아니

가치있는 삶의 기준 세워야

"어느 날 아침, 요제프 K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채 체포되었다. 누군가 그를 모함했음에 틀림없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은 이렇게 시작된다. 죄 없는 사람이 체포되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가 출발한다. 주인공은 법치 국가에서 살고 있었고 법률을 잘 지켰다. 그런데 누가 도대체 집에 쳐들어올 수 있었던 것일까. 자신의 상황을 알고 싶은 그는 남자들에게 따진다. "누가 나를 고소했습니까? 담당기관은 어딥니까? 당신들은 공무원입니까? 제복도 입지 않았네요." 그러나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다.

이 순간 요제프 K는 자신의 존엄성이 송두리째 짓밟히는 경험을 한다. 자기 자신에게 행해지는 일을 알 권리가 있는 사람으로서 누군가 내게 그 정보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한 부분이던 어떤 이가 아무말도 없이 사라지면 두 가지 면에서 가슴이 아프다. 하나는 그 사람의 부재요,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의 해명 정도는 들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해 느끼는 서운함이다. 타인이 우리의 내면 세계에 변화를 일으키는 어떤 행위를 가하면서 이 점을 간과한다면 우리의 존엄성은 상처를 입는다. 내면의 변화를 떠맡고도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굴욕이기도 하다.

독일의 철학자 페터 비에리가 쓴 '삶의 격-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은 인간의 존엄성에 주목한 책이다. 인간의 가장 큰 정신적 자산이지만 삶 속에서 가장 위협받기 쉬운 가치이기도 한 존엄성을 두고 이를 어떻게 지키며 품격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존엄성은 정신적·물질적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철학적 개념이다. 지은이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가 등 세 가지 관점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바라본다. 일상생활과 문학 작품, 영화 등 여러 사례를 근거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모든 측면이나 단계가 존엄성, 즉 인간의 품격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그가 말하는 존엄성이란 어떤 절대적인 속성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우리가 자립성, 진실성, 가치있는 삶에 대한 기준을 바로 세워나갈 때 드러난다.

"존엄성을 잃기도 하고 다시 찾기도 하는 것은 이를테면 균형을 잃었다가 다시 잡았다가 하는 것과도 같다.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존엄의 상실은 중심을 잃고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특별한 균형이 존엄성인 것이다. 이는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일 존엄성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경험하고 나서 그 경험의 고갱이를 머릿속에 고착시킬 수도 없고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게 된다. 마치 사고의 시야에 허연 얼룩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과도 같다." 문항심 옮김. 은행나무.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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