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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엔 습관처럼 육묘장을 걷는다. 연초록 넘실대는 그 길이 참 싱그럽다. 걸으면서 열매가 보이면 따낸다. 귤 묘목에 달린 한 알의 열매도 그의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가히 치명적이다. 가끔 왜소하고 찌든 묘목이 눈에 띄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파리 속에 애지중지 열매 하나를 꼭 보듬고 있다. 여지없이 따낸다. 울고불고하는 묘목의 발버둥에 개의치 않는다. 단 한 알의 그 귤이 차마 금기(禁忌)인 줄을, 도무지 감당 못할 욕심인 줄을 그는 미처 모른다. 다만 소소한 정에 우는 것이다. 인생도 그러하다. 작은 욕심 하나가, 작은 미련하나가, 작은 집념 하나가, 스쳐도 좋을 작은 인연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부르는 경우를 우리는 더러 경험하였고 또 무수히 보아 왔다. 그것이 치명인 줄을 그때는 정말 모르는 것이다. 열심히 귤나무를 키우고 있지만 애기 돌보듯 지극정성을 다하고 있지만, 이들의 운명은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렵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그 운명의 수레바퀴는 미국에 이어 제주감귤 생산량의 50배에 이른다는 중국과도 기어이 FTA를 목전에 두고 있다. 대세의 흐름을 마냥 막아설 수만은 없다. 이 나라는 농사짓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닌 까닭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생명산업인 감귤, 협상이 잘 이뤄져서 한 생애 어머니 아버지 그 지친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 없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들리는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공룡들의 저 발자국 소리, 우리는 이미 전쟁터에 들어선 것이다. 악물어야 한다. 감히 일당 백의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땀도 백배, 정신도 백배, 정성도 백배, 필승의 백배 투지로 무장하고 똘똘 뭉칠 때, 비로소 해볼만한 것이다. 상대가 미국이든 중국이든 세상 어느 나라든간에, 그들도 땅위에 나무를 심는다. 그들도 손으로 나무를 키우고 손으로 그 귤들을 따낸다. 기계로 컴퓨터로 마구 찍어내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다만 각오와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그에 따른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해마다 시월이면, 시월 들어 극조생 밀감을 따기 시작하면 육묘장 인부 구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그 일정에 맞춰 마무리 작업을 서둘고 있는 것이니 강행군이다. 육묘장 맞은편엔 조용한 숲이 하나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 밤나무 도토리나무들이 울창하다. 한여름 무더위에 그 나무 그늘에서 낮잠이라도 자다 깨면, 오싹 추위를 느낄 정도로 시원하다. 이 땅은 서울 사람 소유라는데, 아직까지 그 주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금처럼 오래오래 그냥 방치해 뒀으면 차라리 좋겠다. 점심 먹고 나서 숨도 좀 돌릴 겸 그 숲을 거닐다 보니 웬걸 알밤이 수두룩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그걸 봉지에 주워 왔더니 손녀 혜미도 좋아하더란다. 그 후 농장 가면 으레 그 숲에 들리곤 하였다. 고기를 '낚는 재미'라 하듯이 군밤을 먹는 맛보다 그 알밤을 하나하나 줍는 재미가 더하다. "알밤인가 하고, 조약돌도 줍고…" 어느 시인의 노래가 절로 뇌어지더라. 돌아보면 이런 여유가 아, 얼마만인가? 요 며칠 극조생을 따내면 조생귤 수확때까지 한 보름은 농한기다. 모처럼의 여가인 셈이다. 이 기회에 바다에도 가고, 삼매봉 새연교도 천천히 걸어보고, 돌아오는 길엔 수협 마당에 들려 팔뚝만한 고기도 몇 마리 사 오리라. 푹 고아먹으면서 정말로 시인처럼 좀 쉬리라. <강문신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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