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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원당봉에서 내려다본 파도치는 날의 조천읍 신촌리 전경. 도농 복합형 선도마을로 새롭게 변신하는 미래 꿈꾼다 재일동포 조규훈 선생 중심으로 중학교 설립기금 모아 보낸 나무 마을 청년들 신촌 앞바다에서 뭍으로 끌어내서 중학교 지어 ![]() 바다로 나가는 해녀와 어부들 또한 해신제를 지내며 살아왔다. 엄격한 유교적 전통을 가진 향회재현마을임에도 구슬할망본풀이의 배경이 되는 마을이 신촌리다. 한양 허정승 따님이 우여곡절 끝에 제주에 와서 해녀로서 큰 부자가 되었지만 딸만 아홉을 둔 구슬할망으로 생을 마감한다. 아들에게 제사를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시집 간 딸들에게 신으로 좌정하여 제사상을 받게 하는 모습은 너무도 인간적이다. 아들이 없는 집안을 위한 배려를 무속이라는 공간을 통하여 설정한 이야기로 해석되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마을제에도 여인의 출입을 금하는 신촌리에서 구슬할망본풀이가 출현하게 된 것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출가외인의 예외 조항과 같은 삶의 성격을 발생시킨 넉넉한 사고체계가 출현한 곳. 신원일(71) 전 이장에게 700 여년 신촌리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내세우고 싶은 인물을 물었다. 거침없이 추사의 제자였다는 한학자 매계(梅溪) 이한우(李漢雨) 선생이라고 했다. 제주의 대표적인 풍광을 집약하여 표현한 역대의 시들을 편람하고, 창조적으로 풀어내어 영주십경을 구축한 분이다. 제주의 사계와 공간적 구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이 구분 방식이 지금까지 통용되는 것은 그 설득력이 놀랍다는 것을 의미한다. 겸양 또한 드높은 인격체라 해야겠다. 영주십경에 슬쩍 고향마을 신촌리의 '닭모루' 비경도 집어넣을 만하거늘 빠져 있다. ![]() 1930년대 신촌리 청년들이 농사용 마소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돈을 모아 부지를 마련해 만들었다는 남생이못. ![]() 닭이 알을 품은 형상이라는 닭모루. 남생이못에 얽힌 사연을 알아야 신촌리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1933년 당시 신촌리 청년회원들은 마을이 지니고 있는 고민에 대하여 강력한 해결 방안을 찾고 있었다. 마소가 있어야 농사일을 할 수 있는 여건에서 농경지 부근에 물을 먹일 곳이 없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회의 결과는 땅을 3천 평 정도 구입하여 그 곳에 연못을 만들자는 것. 자금 마련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도박하는 집을 청년회원들이 집단적으로 몰려가 급습하여 모든 판돈을 압수하는 것이었다. 벌어졌을 해프닝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터진다. 청년들의 완력이 공익적 목적이라면 당하는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던 불문율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련한 땅 위에 청년들이 모여들어 땀흘려 땅을 파서 만든 큰 못에 물이 고이고 돈을 빼앗겼던 사람들도 마소를 몰고 와서 물을 먹였으리라. 걸쭉한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남생이못은 신촌리 청년정신의 상징이다. 마을공동체가 발휘할 수 있는 자발성의 징표이기도 하고. 그러한 정신은 마을발전 과정에서 관에 의존하기에 앞서 먼저 시대를 앞서 행해졌다고 한다. ![]() 고구봉 신촌리장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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