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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춘 칼럼]'칼레의 시민'과 '모르쇠 기업들'
김계춘 기자 kckim21@ihalla.com
입력 : 2014. 12.16. 00:00:00
'칼레의 시민'은 거장(巨匠)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중 하나다. 이 조각은 14세기 '백년전쟁(百年戰爭)' 때 칼레시를 구한 6인의 영웅들을 기리는 기념 동상이다.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이렇다. 도버 해협에 인접해 있던 프랑스의 해안도시 칼레는 잉글랜드의 공격을 받고 시민 모두가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다. 당시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는 "시민들 중 6명을 뽑아와라. 그들을 처형하는 대신 모든 칼레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조건을 내놨다.

사람들이 누구를 뽑을지 고심을 거듭하자 시장을 비롯한 고위 관료, 부유한 상인과 귀족 등 상류층 인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자진해서 나선다. 적국(敵國)의 요구대로 목에 밧줄을 걸고 자루옷을 입은 채였다.

이들의 용기있는 행동을 가상히 여긴 에드워드 3세는 처형을 취소하였고, 칼레의 시민들 또한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고 미화(美化)되면서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상징이 된다.

이같은 전통은 오늘의 유럽을 일군 정신적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징병제가 폐지된 영국에서 왕실 및 귀족들이 왕실 내부 규율과 영국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필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일환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보편적으로 확산된 기부문화도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우리나라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경주 최부잣집'이다. 최부잣집은 부불삼대(富不三代)를 넘어 12대에 이르기까지 만석꾼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 기저엔 가문의 육연(六然·자신을 지키는 교훈)과 육훈(六訓·집안을 다스리는 교훈)이 있었다.

'육연'은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自處超然), 남에게 온화하게 대하며(對人靄然),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라(得意淡然) 등이다.

또 '육훈'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남의 땅을 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였다.

그러나 근래 들어 이런 전통과 미덕은 찾아보기 힘들다. 재벌로 대변되는 부자들은 온갖 수단을 강구하며 돈 늘리기에만 혈안이다. 사회 저명인사 등 소위 상류계층의 병역 기피는 아주 오래된 병폐로 자리잡았다.

제주지역의 상황을 보더라도 그렇다. 15일자 본보 보도를 보면 제주에 진출한 기업들의 지역 기여도는 거의 '빵점'에 가깝다.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맞아 올해 면세점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고, 호텔업계 역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마트 등 대형마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업 이익의 지역사회 환원(還元)은 실로 인색하기 짝이 없다. 예컨대 올해 적십자회비의 경우 도내 전체 호텔이 700여만원을, '대박 행진' 중인 면세점은 고작 30만원 납부에 그쳤을 뿐이다. '돈은 제주서 벌고 생색은 서울서 내는' 기업들의 행태에 제주도민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우리의 기업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체득했다면 이익 환원에 '모르쇠'로 일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재벌 3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소동도 결국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재(不在)의 산물이라 여겨진다. <미디어본부장 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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