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회관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과 구산봉(위), 절벽해안이 아름다운 머내바당(아래). 왕자묘·법화사·무오법정사 등 유서 깊은 마을 마을소유 목장 등 넓은 대지로 종합관광지 개발사업 열망 최근 농산물 직거래장터 등 다양한 주민소득 증대 도모 주민 스스로 마을발전에 총력…다가올 미래는 '희망적' 어떻게 이토록 남북으로 길게 뻗은 마을이 형성될 수 있었을까? 제주문화원장을 역임한 하원 출신 조명철(82)씨가 밝혀줬다. "고려가 원나라의 영향력 아래 있던 시기, 제주 또한 그 지배를 받고 있었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영실기암 지역에 상원사(上院寺)가 있었고, 지금 법정악 부근에 중원사(中院寺), 그리고 법화사 일대 하원마을 지경에 하원사(下院寺)가 있었는데 하원사라고 하는 원나라 황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거대한 가람과 주변 영지를 하원이라 부르다가 하원(河源)이 되었다." 불교와 연관성이 뚜렸한 마을임에는 틀림이 없다. 영실 인근 존자암에서부터 법정이오름 법정사, 그리고 천년 고찰 법화사에 이르는 흐름도가 이를 말해준다. 하원동 산1번지인 영실기암. 주민들이 물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마을 이름에 물이 들어가게 한 연유는 뭘까. 수량이 풍부하여 논농사를 많이 했을 정도로 미작지역이었다. 법화사 내에 법화수는 그 옆 원두물과 함께 물맛이 좋고 시원하기로 제주에서 으뜸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1940년대에 상수도를 사용한 마을이다. 1985년까지 하원 주민들의 상수원으로 법화수를 사용하였다. 지명이 광덕코지라고 하는 원만사에서 솟아나는 약수는 일품이다. 말과 뜻 그대로 약이 되는 '약수'(藥水)다. 법화사지의 역사를 보여주는 석조유물들. 마을회가 보유한 땅이 7만 여 평, 마을목장조합 땅이 35만 평이나 된다. 탐라대학 부지를 '교육용 목적'을 단서로 달아서 양도한 주민들이다. 선비들이 많이 배출 되었던 문화적 전통이 교육에 대한 존중감으로 자리매김 되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탐라대학교 부지 문제로 갈등이 있긴 하지만 낙관하고 있었다. 다른 용도로 변경은 제주도지사가 쥐고 있기 때문. 땅투기 여지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오상호 회장 이수옥(51) 부녀회장의 꿈은 소박하다. 부녀회 사무실이 있으면 마을발전에 보탬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39세 나이에 자녀를 5명이나 둔 강종환 청년회장이 꿈꾸는 하원동의 미래는 스케일이 컸다. "30년 뒤, 큰 딸이 44세가 되었을 때, 하원은 종합적인 관광지로 변해있을 것이다. 마을이 운영하는 면세점이 있을 것이며 중산간 일대 마을 부지에 관광시설에 근무하는 자녀들이 많아 외지에 나가있는 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들어와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 청년들은 시설 좋은 복지관에서 편안한 노후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하원마을에서 바라본 한라산. <공공미술가> <인터뷰 음성파일은 ihalla.com에서 청취 가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