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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하루를 시작하며] 왜 제주신화인가?
입력 : 2015. 04.15. 00:00:00
얼마 전 '제주 신들의 고향을 찾아서' 독서기행을 하였다. 독서기행이란 그 책의 배경이나 스토리에 얽힌 지역을 돌아보며 책 너머의 의미까지도 헤아려보는 입체적 독서활동이다. 작년엔 유홍준의 제주편 문화유산 답사기였는데 이번엔 이석범의 '제주신화'를 읽고 돌아보는 기행이다. 이미 책을 통해서 우리 제주신화에 빠져있던 터라 기대가 컸다. 기행지는 탐라개국신화로 이어지는 온평 혼인지, 지금도 신목이 치마저고리를 갈아입는 신천 현씨일월당, 설문대 할망 원력이 서린 표선 당케의 세명주 할망당 등 책에 소개되지 않은 무조신들을 돌아볼 것이다. 이 분야 연구가인 양영자 박사에게 안내를 요청했더니 쾌히 허락한다. 얼마나 열정인지 사전 답사까지 하여 깊이 있는 해설에 의미 확장까지 묘미를 한껏 높여준다.

제주신화라면 삼성혈 또는 설문대 할망 이야기 아니면 세경신, 영등 입춘굿 등 민속신앙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신들의 내력에 얽힌 족보를 보면 과연 1만8천신이라 이를 만큼 제주엔 신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도 무수한 신들이 등장하지만 제주신화도 결코 못지않다. 천지개벽의 천지왕에서부터 대별왕 소별왕, 생명신인 삼승할망, 서천꽃밭 할락궁이, 영등신, 사랑과 농경의 자청비, 무당들 조상인 무조신과 그 자손인 당신이나 미륵신들, 도깨비신, 개개의 조상신들까지. 이루 헤아리기조차 불가하다.

신의 내력을 풀어내는 본풀이는 무당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온 생생하게 살아있는 신화의 원전이다. 제주의 굿은 '신화를 극화한 의례'로 신을 중심으로 한 신앙공동체의 원형이다. 심방과 단골 신앙민들이 함께 굿이라는 형태로 전승해 온 민속인 것이다. 그래서 제주 칠머리 영등굿이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것도 이런 민속적 가치가 인증된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제주신화를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옛 사람들의 의식세계나 삶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많은 발굴과 체계적 연구로 제주만이 갖는 독특한 문화사적 담론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신화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죽음보다 강한 게 사랑이라면 지식이나 역사보다 더 강한 게 상상력이다. 이런 상상력이 신화를 만들어내고, 꿈이 오늘의 인간 문명을 이룬 원동력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그리스·로마 신화가 인류문명에 끼친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신화를 소재로 수많은 시나 소설, 희곡이 씌어졌고 음악, 그림, 조각상들이 예술로 탄생한 것이다. 특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에로스 등 어떤 말의 어원이나 심리학적 용어들도 신화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제주신화 역시 언어의 보물창고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제주심방들이 벌이는 굿에는 제주어 원전이 고스란히 살아있어 언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그리스 신화가 기록신화로 세계최고라면 제주신화는 구비전승신화로 세계 제일이다. 민속신앙으로 생생히 살아있는 굿은 노래, 춤, 장단, 연극 등 모든 요소를 갖춘 종합예술로 평가받는다. 그렇다. 사랑과 농신인 자청비! 오줌 멀리 갈기기 시합을 벌이는 해학까지 곁들인 자청비 신화를 우리고유의 창극인 공연 예술로 승화시킨다면 아마 모두들 열광할 것이다. 문화란 삶의 총체가 아니던가. 문화 콘텐츠는 가장 우아하고 강력한 자원이다. 제주신화엔 세계가 주목할 문화자원들이 얼마든지 있다.

너무 비약했나보다. 아무튼 제주신화가 지니는 의미와 잠재력은 대단하다. 이번 독서기행은 제주 신들이 봄꽃처럼 피어나는 하루였다. <이경주 서귀포시민책읽기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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