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그녀의 이름은 야마모토 마사코라 했다. 잠시 동안이겠지만 이남덕이란 이름으로도 불린 적이 있는 여인. 1921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올해 95세가 된다. 그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다큐멘터리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을 보았다. 한 지인으로부터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영화를 상영하니 꼭 와달라는 당부를 들었을 때 망설임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제주시에선 아무래도 서귀포가 멀게만 느껴지나 보다. 십여 명에게 문자를 날렸지만 함께 가겠다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다. 바쁘다는 이유를 대었지만 산 넘어 간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기 전 사카이 감독으로부터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민족과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마사코의 삶에서 보았다고 한다. 여사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녀 생전에 인생여정을 더듬어 보고자 무척 서둘렀다고 한다. 야마모토 마사코는 화가 이중섭의 아내이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5년에 그녀는 화가 이중섭과 조선 땅 원산에서 결혼을 한다. 식민지 출신의 청년을 사랑한 일본인 여자. 그야말로 미친 사랑이었는지 모른다. 오늘날에도 국제결혼에는 어려움이 따르는데 당시엔 모든 것을 던질 각오가 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사코는 누구보다 용기있는 여성이었다 할 것이다. 결혼 후 이중섭은 마사코에게 이남덕이란 한국 이름을 붙여준다. 한국에서 산 8년간 그녀는 이 이름으로 불리어지지 않았을까. 다큐멘터리는 마사코가 이중섭과의 추억이 있는 한국의 여러 곳을 방문하여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서울, 부산, 제주, 통영을 차례로 찾는다. 원산은 결혼해 아이들이 태어난 곳이지만 갈 수 없는 땅이다. 6·25 전쟁이 터지면서 이중섭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난다. 몸만 간신히 부산으로 피난왔다가 날씨가 따뜻하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제주도로 온다. 서귀포의 이중섭미술관 바로 앞에 있는 초가 단칸방을 얻어 네 식구가 피난 생활을 한다. 먹을 것이 없어 바다에 나가 게를 잡아 삶아 먹었다고 한다. 지겹게도 먹었을 이 게가 이중섭 회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비록 힘든 삶이었지만 제주도에서의 1년 남짓한 삶이 이중섭의 삶에서 가장 행복하던 때가 아니었을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귀포를 모티브로 한 이중섭의 그림은 결코 어둡지 않다. 해학이 있고 따뜻한 인간애가 표출되고 있다. 이중섭과 가족은 다시 부산으로 갔다가 통영으로 가기도 한다. 생활력이라곤 젬병인 이중섭과 가족은 영양실조로 피골이 상접한 상태가 된다. 너무도 가혹한 현실에 이중섭은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낸다. 자신도 뒤따라가려 했지만 당시 한국과 일본은 미수교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이중섭은 가족과 헤어지게 되고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만다. 몇 년 뒤 이중섭은 영양실조로 쓸쓸하게 사망한다.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불우하게 살다간 예술가가 어찌 이중섭뿐이겠는가. 사후에라도 높은 예술적 향기를 인정 받았으니 행복한 편이라면 그나마 고인에게 위로가 될 것인가. 60여년 전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몸을 뉘였던 두어 평의 단칸방. '그땐 몰랐는데 이렇게 좁은 곳이었다니……' 90세가 넘은 마사코가, 아니 이남덕이 중얼거리고 있다. 서귀포는 이중섭과의 짧은 인연을 소중하게 살려내고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이중섭미술관이 그것이다. 이중섭 거리도 있다. 그의 가난과 슬픔과 꿈이 녹아 있는 곳, 누군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했던가. <권재효 시인>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