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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숲을 복지자원으로](2)숲에서 인성을 기른다
'더불어 살아가는 숲' 아이들에게 선물하자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5. 10.09. 00:00:00

지난 3일 화순곶자왈 생태숲길 '놀이숲 곶자왈'에 참여한 아이들이 울퉁불퉁한 숲길을 걸으며 숲 세상과 만나고 있다. 강경민기자

서귀포휴양림 숲유치원· 붉은오름 청소년 숲 체험학교
숲 활용 유아·청소년 건강한 성장 돕는 긍정 정서 지원

숲 속에 깃든 아이들의 눈은 천리안이라도 된 것 같았다. 어른들이 미처 못본 거미줄을 쉴 사이 없이 찾아냈다. "선생님, 저기 거미줄이 있어요." "여기도 있어요." 대여섯 걸음을 떼어놓으면 또다시 그렇게 선생님을 부르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초록빛을 닮은 맑은 음성이 바람처럼 나무 위를 날아다녔다.

▶다름을 존중하는 방법 알려주는 숲=지난 3일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곶자왈 생태숲길. 예닐곱살된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하나둘 도착했다. 제주올레길 주민행복사업의 하나로 서귀포시가 주관하고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기획·운영하는 어린이 대상 '놀이숲 곶자왈' 프로그램이 이곳에서 펼쳐졌다.

숲길은 아이들의 울음을 멈추게 했다. 아빠 손을 놓지 않으려 눈물 흘리던 아이는 숲길에 발을 들여놓기 전 '방울꽃' 선생님이 읽어주는 그림책 '무당거미 알록이' 이야기에 집중하더니 숲 속에선 이내 거미줄 찾는 재미에 빠졌다. 울퉁불퉁 숲길을 걷고 겉옷 위로 거미가 기어가도 아이들은 보채거나 놀라지 않았다. 떨어진 나뭇잎을 하늘로 던져 비를 뿌려보고 나비인 양 날개 펴고 숲향기를 맡으며 숲 속의 주인공이 됐다.

그 숲길에선 누구도 아이들을 향해 "하지마", "안돼", "틀렸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숲 밖으로 나가면 늘 어떤 정답이 있다고 여기는 어른들이 살지만 숲에는 정답이 없다. 곤충과 풀나무가 그 자리에서 쉼없이 변하며 살아가는 곳이 숲이다. 그래서 나무 이름, 꽃 이름을 아는 것 보다 '왕따'없이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을 발견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아이들에겐 왜 숲이 필요한 것일까. 이날 '방울꽃' 선생님으로 변신해 숲체험 프로그램을 이끈 박은실 숲해설가는 "다소 거친 바닥과 계절따라 변하는 숲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아이들의 신체발달이 이루어진다"며 "나무, 곤충, 풀, 땅이 더불어 사는 모습을 통해 내가 특별한 만큼 너 역시 특별하고 다름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덧붙였다.

숲길을 걷기 전에 아이들의 긴장된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숲대문놀이를 하고 있다.

▶창조력·면역력·상상력 키우는 공간=숲은 생애주기나 건강상태 등 개인의 상황에 맞는 휴양·치유 등 다양한 산림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특히 유아와 청소년기에 접하는 숲은 성장기에 필요한 창조력, 면역력,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를 활용한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서귀포시가 운영하는 서귀포자연휴양림은 때때로 아이들을 위한 숲유치원이 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대상으로 매월 주제가 있는 프로그램과 숲 탐방을 마련해 아이들이 숲 속 생명체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30회에 걸쳐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숲유치원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내년엔 서귀포자연휴양림 안에 유아숲체험원을 별도로 조성할 계획이다. 야외 체험 학습장을 만들고 의자를 갖추는 등 숲유치원 프로그램을 보다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놀이숲 곶자왈'에서 만난 거미줄.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붉은오름자연휴양림엔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돕고 자아존중감을 높이기 위한 '청소년 숲 체험 학교'가 들어섰다. 서귀포시와 제주생태교육연구소가 업무협약을 체결해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월 1회 자연생태 체험을 이어가고 있다. '숲 체험학교'를 찾는 중·고등학생들은 붉은오름, 말찻오름, 탐방로를 누비며 사계절 변화하는 숲의 얼굴을 만난다.

서귀포시는 현재 어린이집, 유치원, 각급 학교에 붉은오름자연휴양림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생태학습장으로 널리 활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취지다. 숲 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휴양림 시설을 이용해 숲길 걷기, 명상 체험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폭력 예방위한 명상숲 조성 늘어=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겐 학교숲이 있다. 1940년 개교한 서귀포시 도순초. 학교 역사만큼 오랜 130여 그루의 소나무가 인상적인 도순초 학교숲은 '푸른 동산'이란 이름이 달렸다. 솔방울은 미술 재료로 쓰이고 숲에 사는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는 아이들의 봄날 친구다. 저학년 학생들에겐 숲이 곧 놀이터다.

오순경 도순초 교감은 "학교숲이 아이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며 "지역 주민들도 학교숲 소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 등 마을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놀이숲 곶자왈'에 참여한 어린이가 관찰통에서 거미를 들여다보고 있다.

도순초 '푸른동산'의 솔방울은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미술재료가 된다.

'명상숲'으로 불리는 학교숲도 있다. 국비와 지방비가 지원되는 명상숲은 2010년 이래 제주도내 16개교에 조성됐다. 서귀포시 지역만 해도 올해 6000만원씩 투입해 동홍초와 서귀중앙여중 2개교에 명상숲을 가꿨다. 아름드리 숲이 되려면 앞으로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동홍초는 도심에 사는 학생들과 숲이 주는 이로움을 나눌 꿈에 부풀어 있다. 서귀중앙여중은 명상숲 조성을 통해 학교숲이 한결 풍성해진 덕에 미술 수업 장소로, 책 읽는 쉼터로 아이들의 발길이 크게 늘었다.

숲 체험 활동이 어린이들의 사회성을 높이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숲에서 수업을 진행할 경우 에너지와 즐거움 등 긍정적인 정서 변화가 크고 부정적 정서를 감소시킨다. 학업 부담에 짓눌리고 인터넷 중독, 학교 폭력 등으로 취약·위기 청소년이 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숲은 가만히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존재다. 아이들에게 숲을 선물해줘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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